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
『사회계약론』의 첫 줄을 장식하는 이 구절은 과거 200년 동안 많은 혁명적인 사람들의 가슴을 휘저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같은 책에 나오는 다른 견해, 즉 국가의 일반 선을 위해 행동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자유롭도록 강제되어야’한다는 다소 당혹스런 견해에 의해 상쇄된다. 이 견해는 마치 무엇이 진정으로 국가의 선을 위한 일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자행될 수 있는 직권남용에 대한 면죄부를 제공하는 듯이 보인다. 이 두 가지 사상은 루소 철학의 비타협적 성격을 보여준다. 그는 논란이 되는,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견해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표출한다. 그런 견해를 익명으로 출판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시대에 루소는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로 그의 많은 저작이 금지되었고, 그는 늘 박해의 두려움 속에서 살았으며, 수차례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말년에 그가 과대망상에 빠져 자신이 국제적 계략의 희생자라고 믿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의 중심 과제는 합법적 권력의 근원과 한계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는 국가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사회계약에서, 또는 그가 때때로 사용하는 표현인 사회조약social pact에서 온다고 믿는다. 이런 계약을 통해 여러 무리의 개인들이 하나의 정치체로, 즉 그 자체의 일반 의지를 ─ 이것이 반드시 구성원들의 개별적 의지들의 총합일 필요는 없다 ─ 갖춘 전체로 변모된다.
사회계약 social contract
홉스와 로크를 포함한 사회계약의 전통에 있는 대부분의 저술가들처럼, 루소는 사회계약을 마치 역사적 사건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계약이란 개념을 가지고 실제의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려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사회계약이란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를 드러내는 개념적 장치에 불과하다. 루소는 역사의 한 시점에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 서로 계약을 행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국가의 관계는 그러한 연합이라는 가설적 근거를 고찰함으로써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에 의해 이루어진 기본적 합의는, 그들이 자신들의 공공선을 위해 연합하리라는 의사를 포함한다. 혼자 살아가기보다는 사회의 일부로서 서로 협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사회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들은 서로 합작하여 국가를 세울 강력한 동기를 가진다.
얼핏 보기에 루소는 두 개의 양립 불가능한 이상을 즐기는 듯이 보인다. 그는 모든 인간이, 심지어 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영유하는 자유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삶의 커다란 혜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연적 자유는 인간성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전적으로 포기한다면, 즉 노예가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이 못된다. 만일 사회가 우리의 자유를 전부 앗아간다면 사회에 가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잃을 터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스스로 설정한 과제는, 우리는 어떻게 자유를 희생함이 없이 국가를 세울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 과제는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당신이 보호의 혜택을 위해 당신의 자연적 자유의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사회적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소는 자신의 독특한 사회계약론이 진정한 자유와 사회의 결실을 결합시켜줄 처방을 제공해주리라고 믿는다. 이런 설명의 중심부에 그의 일반 의지론이 있다.
일반 의지 the general will
한 번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로 통합되면 이들은 공동의 목표에 의해 연합된다. 일반 의지란 전체로서의 국가의 바람을 말한다. 즉 일반 의지는 공공선을 추구할 것이다.
일반 의지라는 개념은 만인의 의지라는 개념과 비교할 때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함께 국가를 세운 개인들 모두는 어떤 특정한 결과를 바란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국가를 통해 무언가를 얻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들 모두가 세금 삭감을 원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들 모두의 의지는 세금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전체로서의 국가가 세금을 높게 유지함으로써 무언가 얻기를 기대한다면 이것은 일반 의지가 된다. 비록 개별적 이익을 노리는 개인들이 이 정책에 따르고 싶어 하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공공선을 위해서 세금은 높게 책정되어야 하며, 이것에 저항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유롭도록 강제되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나 개인으로서는 신작로가 내 뒤뜰을 통과하지 않는 것이 기득권적 이익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 새 도로가 공공선을 위해 최선임이 밝혀진다면 국가의 일원으로서 나는 반드시 이것을 의지해야 한다.
루소의 철학은 사적 이익과 욕구를 가진 대개는 이기적인 개인들과 국가의 일부로서의 개인들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한다. 후자의 공중의 역할에 있어 일반 의지에 반대할 권한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더 나은 자아에 등을 돌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개인으로서 가지는 이기적 욕구는 언제나 일반 의지의 더 높은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 일반 의지는 공공선을 위해 존재하며, 국가의 존속은 그 구성원들이 사적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상충되는 곳에서 사적 이익을 보류하는 행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