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데이비드 흄의 『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

 

 

 

플라톤을 제외하고 대화 형태의 글로 성공한 철학자는 거의 없지만, 가장 인상적인 예외에 속하는 사람이 흄이다. 흄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이하 『대화』)는 철학적 논증에 있어서나 문학적 면모에 있어서 하나의 대작이다. 소크라테스에게만 주역을 맡겼던 플라톤과는 달리 흄은 세 명의 주요 대화자들, 즉 데미아, 클리안테스, 그리고 필로에게 골고루 좋은 논증을 나누어주었다. 비록 전체적으로는 마지막 인물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대화체의 효과는 독자를 논쟁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으며, 고대 로마의 작가 키케로에게서 빌어온 기술인 대화에서의 치고받기를 검토함으로써만 발견될 수 있다.

흄은 이 저작을 그의 생존 시에 발간하지 않았다. 종교 권력자들로부터의 박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반드시 출간되도록 하기 위해 무척 힘썼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기독교 신의 존재를 옹호하기 위한 설계 논증design argument’이다. 이 설계 논증은 자연종교 옹호자들, 즉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과학적 증거 위에 정초시켰던 사람들의 버팀줄 구실을 했다. 자연종교는 통상 계시와 대조되었다. 계시는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해 여러 복음서가 제공하는 입증인데, 그리스도가 행한 기적들, 특히 부활에 대한 복음서들의 설명을 포함한다. 흄은 이미 (앞장에서 논의된)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에 실린 ‘기적에 관하여’라는 말썽 많은 논문에서 계시의 주장에 대해 집중공격을 시도한 바 있다. 『대화』에서 자연종교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공격당한다. 여기서의 논증들은 흄 자신의 말로써가 아니라 가공인물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는 말이다.

등장인물들 the characters

『대화』에서 실제로는 다섯 명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모든 논쟁은 세 사람의 주요 발언자들, 즉 클리안테스, 데미아 그리고 필로에 의해 진행된다. 전체의 대화는 팜필루스가 그의 친구인 헤르미푸스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지만 이들 중 아무도 철학적 토론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세 명의 주요 인물들 각자는 뚜렷한 입장을 보인다. 클리안테스는 설계 논증, 즉 우주에서 명백히 관찰되는 설계가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견해를 신봉한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종교의 옹호자이다. 데미아는 신앙주의자이다. 그는 이성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 신은 존재하며 고유한 속성들을 가진다는 것을 신앙으로서 믿는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소위 제일원인 논증이 신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입증이 된다고 믿는다. 필로는 완화된 회의주의자로서 흄 자신이 기꺼이 사용했음직한 논증들을 (한 가지 예외가 가능하지만) 제시한다. 『대화』에서 필로의 기본 역할은 다른 두 인물들이 내놓는 입장들을 비판하여, 이성은 신의 속성들에 관해 그 어떤 중요한 것도 드러내주지 못함을 밝히는 일이다. 특히 설계 논증과 이 논증이 이끄는 결론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통렬할 정도다. 이 책의 대부분에서 필로는 쉽게 무신론자로 확인된다. 그러나 정작 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생각하며 중요한 물음은 그가 어떤 속성들을 가지느냐에 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발언이 권력자들이 그 저작을 무신론의 옹호라 하여 금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흄이 덧칠한 아이러니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설계 논증 the design argument

클리안테스는 요즘은 ‘설계 논증’으로 더 잘 알려진 ‘후천적 논증argument a posteriori’을 제시한다. 후천적 논증이란 경험에 기초한 논증을 말한다. 이 논증은 자연세계를 고찰함으로써 전지·전능·자비의 신이 존재함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하는 논증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주변을 둘러본다면, 우리는 자연세계의 모든 측면이 명백한 설계의 징표들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의 기계처럼 서로 잘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은 보는 일에 기가 막히게 적합하다. 수정체와 각막, 망막은 어떤 우월한 지능체에 의해 면밀히 사려된 듯이 보이며, 눈의 설계와 제작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 그 어느 것보다도 정교하다. 이런 관찰로부터 클리안테스가 이끌어낸 결론은, 자연세계는 지적인 창조자에 의해 설계되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창조자는 그의 작품의 위대함과 장엄함에 걸맞은 지성을 갖추었음에 틀림없다. 달리 말하면 클리안테스는 자연과 인공물 사이의 유비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 유비에 기초하여 신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신은 전능·전지하고 자비롭다고 결론짓는다.

이 논증을 더 뒷받침하기 위해 클리안테스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예들을 사용한다.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알아들을 만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리고 지당하게 거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뚜렷한 음성은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클리안테스에 따르면 자연이라는 작품은 신의 존재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클리안테스가 사용하는 또 다른 예는 살아있는 도서관의 예이다. 책들이 식물들처럼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생명 있는 것들이라고 상상해보자. 만일 우리가 징표들(의미 있게 질서를 갖추어 배열된 단어들)로 가득한 어떤 책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결정적인 증거로, 즉 그 책이 어떤 지성을 갖춘 존재에 의해 쓰였다는 증거로 삼을 것이다. 설령 책들이 스스로 재생산 활동을 한다 할지라도, 이런 사실이 그것들이 사유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는 증거를 약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연이라는 작품 안에서 지성과 설계를 읽을 수 있다고 클리안테스는 주장한다. 오직 눈먼 독단론자만이 자연이 제시하는 신의 존재와 속성들에 대한 증거를 부정할 것이며, 적어도 클리안테스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만 『대화』의 많은 분량이 필로에게 그리고 일정 분량이 데미아에게 할당되어 이들이 클리안테스의 논증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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