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맥호벡Frank MacHovec의 『한 권으로 읽는 동양철학』(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요가의 기원 2
4. 프라나야마Pranayama
프라나야마는 요가의 높은 단계로 계속해서 올라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 몸과 신체의 기관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호흡조절이다. 프라나prana*는 공기와 호흡에 깃들어 있는 생명력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우주의 정기, 즉 프라나를 섭취하고 숨을 참고 있는 동안에 그것을 자 기화하는 특수한 호흡법으로, 우주의 에너지를 축적해 두었다가 신경활동 의 영양소로 공급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활기를 찾는 것처럼 인간 은 공기에서 프라나를 찾는다. 요가철학에 따르면 프라나 에너지는 다른 사람과 나누거나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나누어준 사람이 약 해진다. 찬물로 샤워를 하거나 놀라거나 고통스러울 때 숨이 턱 막히는 것은 몸이 프라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요가에서는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데 영적인 요소도 함께 불어넣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가를 할 때는 보통 호흡연습이 포함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호흡연습을 하는 시간은 해뜨기 전(화장실을 다녀온 뒤)과 해가 지고 나서 2시간 뒤이다. 가끔씩 심호흡을 하면 혈압을 낮추고 횡경막을 단련시키며 폐에 풍부한 산소를 공급하는 데 유익하다.
요가철학에 따르면 척추의 기저, 즉 생식기와 항문 사이에 힘의 중심인 물 라다라 차크라muladhara chakra(힘의 중심점)가 있는데 심호흡을 하면 여기에서 우주의 생명에너지가 방출된다. 전통적으로 비슈누 무드라(엄지손가락을 한쪽 콧구멍에, 중지와 약지를 다른 쪽에 대는 동작)를 하여 한 콧구멍씩 번갈아가며 호흡하기도 했는데 각 콧구멍이 몸의 같은 쪽 부분을 활성화시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풀무호흡Bhastrika 이 호흡법은 사하스라라 차크라sahasrara-chakra(머리의 정수 리)로 침투하는 우주의 생명에너지를 방출한다고 믿어진다. 차크라는 신체에 서 기가 모이는 부위를 말한다. 정상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양쪽 콧구멍을 막은 뒤 오른쪽 콧구멍으로만 숨을 내쉰다. 그리고 계속 왼쪽 콧구멍을 막은 채 오른쪽 콧구멍으로 재빨리 숨을 들이마신다. 이번에는 왼쪽 콧구멍으로만 숨을 내쉰 뒤 오른쪽 콧구멍은 계속 막은 채 왼쪽 콧구멍으로 재빨리 숨을 들이마신다. 이를 10회 반복한다.
벌소리호흡Bhramari 좋아하는 명상 자세를 하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가벼운 콧소리를 낸다. 이러한 벌소리는 나다nada라고 불리며 깊은 명상을 돕는 만트라로 온몸에 울려 퍼진다고 믿어진다.
5. 프라티아하라Pratyahara
프라티아하라는 일상적인 광경, 소리, 냄새, 외부세계에서 느껴지는 감각 에서 의도적으로 물러남으로써 감각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내면으로 향하는 단계다. 선천적 중추中樞인 간뇌間腦와 후천적 중추인 대뇌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며 소위 육감, 본능을 지배하는 간뇌의 개발에 중점적인 수행을 한다. 인간은 오관의 속박이나 그릇된 감수에 의해서 참된 자신과 우주의 본체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감각기관에 대한 자극을 차단하고 심신의 휴식을 얻자는 것이다. 프라티아하라는 의도적인 선택적 부주의이며, 감각적 자극을 용인하되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구한다. 이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뚜렷한 효과는 일상에서 감각이라는 총탄세례를 받아도 마음의 소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찬트, 노래, 만트라를 이 용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구루가 수행자에게 만트라를 선택해주었는데 그 만트라는 그 수행자 혼자서만 사용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았다. 만트라 구절을 명상하면서 마음속으로 외울 수도 있고 소리를 내어 외울 수도 있었다. 옴은 신성한 음절로, 현재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옛 만트라이다. 옴은 세 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각과 현실을 뜻하는 아AH로 시작하여 여행 혹은 영적 세계를 뜻하는 우OO, 온몸 깊이 울려 퍼지는 하나 되는 원리인 음MM으로 이어진다. 인쇄된 만트라를 명상에 사용할 수도 있다. 처음에 만트라를 본 뒤 눈을 감고 떠올리거나 다양한 목소리로 이 만트라를 듣는다고 상상하거나 실제로 소리 내어 왼다.
수행법
인파 속에 있을 때, 늦어서 달려갈 때, 지루한 회의 중이거나 길이 밀 릴 때처럼 대개 서두르게 되는 시간에 몸과 마음을 진정시켜라. 가려움, 통증 또는 감각 신호(소리, 냄새, 촉각, 빛 등)를 무시함으로써 프라티아하라를 경험할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바로 받지 말고 전화벨이 더 오래 울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거나 평소보다 우편함을 한 시간 늦게 열어보아라. 짜증스러운 광경이나 소리(떨어지는 빗소리,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 싫어하는 음악, 혹은 시끄러운 기 계 소리)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라.
창의성을 활용하라. 혁신하라. 좋아하는 명상 자세를 취하고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생각들을 살핀다. 정원사가 모종삽으로 흙을 뒤집듯이 생각 들을 옮겨 가만히 한쪽에 치워둔다. 이러한 정원사의 이미지를 이용해 방해 가 되는 생각들을 치워두면 좀 더 효과적으로 명상할 수 있다. 또 다른 유용 한 이미지로는 잇달아 밀려왔다가 해변을 천천히 씻어 내리는 파도의 이미지 가 있다. 밀려왔다 밀려가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는 파도와 같이 방해가 되는 생각들도 오갈 수 있지만 본질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프라티아하라에 통 달하면 평온하고 사색적인 마음과 명랑한 낙천주의적 태도를 발달시킬 수 있다.
6. 다라나Dharana
다라나는 강렬하고 흩어지지 않으며 정교하게 정신을 집중하는 단계로, 흔 히 ‘마음의 평정’ 혹은 ‘한 대상에 대한 집중’으로 불린다. 이 단계는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든 최소화하고 제거하는 다섯 번째 가지 프라티아하라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라나는 물체, 생각, 느낌 속으로 깊게 들어 가 하나가 되거나 일체감을 경험할 정도의 집중 상태에 이르는 데 사용된다. 다라나를 달성하려면 마음에서 다른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고 제거하는 연습 과 경험이 필요하다.
수행법
꽃, 나무나 관목, 카펫의 무늬, 천이나 옷, 그림이나 풍경의 일부분, 몸의 일부분이나 신체기능, 음악에서 한 악기의 소리, 음조나 리듬, 기계나 엔진 소리에 주의를 집중한다. 어두운 방에 켜놓은 촛불 하나가 다라나 명상 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촛불은 밝은 흰색과 노란색으로 된 바깥쪽에서 시 작해 주황색을 거쳐 안쪽 깊은 곳의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서로 대조적인 빛 과 어둠으로 이뤄져 있다. 밀랍은 고체에서 반고체를 거쳐 액체 상태로, 불투 명 상태에서 투명한 상태로 변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불 켜진 초는 명상하기에 이상적인 대상이다. 물이 든 컵도 좋은 대상이다. 물이 든 컵은 단단하지만 젖어 있고 보는 면마다 빛을 다르게 반사한다. 물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마찬가지로 뾰족하게 깍은 나무연필은 에나멜을 입힌 매끈한 옆면, 부드럽고 매끈한 나무, 단단하고 검은 연필심, 딱딱하고 차가운 놋쇠 틀 안에 든 말랑 말랑한 고무지우개로 이루어져 있어 명상에 좋다. 복숭아나 살구 혹은 올리브 씨, 고무줄, 신문을 이용해도 좋다.
7. 디야나Dhyana
디야나는 다라나와 질적으로 다르다. 다라나가 고정된 상태, 심오한 집중 상태에 가깝다면 디야나는 열렬하고 열려 있으며 잘 받아들이는 상태로, 명상을 통해 인식을 얻는 단계다. 디야나에서 마음과 영혼은 다라나에서 사용 하는 외부의 명상 대상 혹은 이미지에서 더욱 심오하고 내면적인 영적 명상의 단계로 옮겨간다. 디야나는 다라나와 느낌이 다르다. 다라나는 공예품을 만들 때처럼 진행과정과 세부사항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반면, 디야나는 특정한 동기 없이 느긋하고 고요하며 평화롭게 사색에 잠기는 것이다. 디야나에서 마음은 하늘처럼 활짝 펼쳐진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
수행법
백일몽, 몽상,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기, 좋아하는 음식을 맛보거나 눈을 감고 좋아하는 음악 감상하기, 편안하게 쉬기 등 디야나는 ‘시적인 표류’ 혹은 ‘예술적인 휴식’이다. 선불교에서는 디야나를 ‘상상의 통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우물 속으로 빠지는 것’이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탄 것’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날씨가 맑은 밤에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달과 별을 보면서 디야나를 발달시킬 수 있다. 모래 와 파도, 모래와 나무껍질의 감촉, 조개껍데기와 돌멩이, 바닷바람, 먼 바다의 파도 위에서 반짝이는 햇빛, 구름이 있는 해변은 수백 년 동안 명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출과 일몰, 산맥, 숲, 사막 혹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의 주변 환경 도 명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8. 사마디Samadhi
사마디에서는 마음이 요가 명상의 최고 단계인 우주적, 혹은 보편적 의식 kaivalya과 연결된다. 해탈moksha, 즉 절대 그 아래로 떨어질 수 없는 명상적 인 식 수준에 오르는 것이다. 요가의 마지막 세 단계는 내면에서 우주로 떠나는 여행과 같다. 다라나는 명상의 항로에서 자아라는 우주선을 조종하는 데 유용한 기술과 자제력을 배우는 것이고, 디야나는 어떤 방해물이 가로막더라도 내면에서 우주를 향해 조종하는 것이었다. 사마디는 전반적으로 우주라는 새로운 세계, 즉 우주적 의식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면 자아라는 우주선은 사람이나 속세, 물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우주의 힘과 자유로 움직인다. 자아는 우주의 팔에 안겨 우주와 결합한다. 이 마지막 여덟 번째 단계는 누구도 빼앗 아갈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취이며 진정 신비로운 경험이다.
사마디는 요가의 다른 단계들에서 언제라도 번쩍일 수 있다. 역설적이게 도 우리는 사마디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원료 속에 있지만, 사마디에 도달하는 건 우리 스스로 시작하고 계속해서 끝내야 하는 고독한 여행이다. 이 과정을 『문다카 우파니샤드Mundaka Upanishad』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비밀스런 가르침을 활처럼 잡고
명상으로 날카로워진 화살을 활시위에 걸어라.
일체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활시위를 당겨라.
이렇게 활, 과녁, 마음이 영원해진다.
옴이 활, 자아가 화살,
일체감이 과녁이 되게 하라.
인식을 통해 과녁을 쏘아라.
그리하여 화살, 과녁, 마음이 하나가 된다.
사마디를 얻었다는 징조는 신비로운 화합인 “모든 것이 하나all is one”임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인 상태(사비타르카savitarka)는 사마디의 시작이다.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는 무엇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사마디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진 사람도 없다. 나도, 그대도, 그것도 없다.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다. 아무도 없고 모 든 것이 모두이다.
사마디는 몸과 마음에 신선한 바람, 즐거움, 깊은 평화, 명확하고 순수한 생각과 추리를 불러온다. 전체적으로 궁극의 사실, 절대의 존재, 우주의 인식을 깨닫는 효과가 있다. 요가의 아버지 파탄잘리는 사마디가 일곱 단계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1. 진리에 대한 깊고 진지한 열망subhecha
2. 올바른 탐구 vicharana
3. 자아, 지성, 기존 지식과 훈련의 쇠퇴로 말미암은 직관력, 통찰력, 깨달음의 발달 tamanasa
4. 요가수행을 통한 몸의 정화와 명상을 통한 마음의 정화satvapatti
5. 세상사와 세속의 문제를 초월한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 상태asamsakthi
6. 더 이상 외부세계의 지배력이 없는 비현실적이고 무상한 상태 pararthabhavina
7. 만물에서 절대 존재, 영원의 존재, 보편적 의식을 볼 수 있는 능력turya
수행법
고대에서 전해지는 다음 두 가지 메시지를 천천히 읽은 뒤 명상하라. 첫 번째는 『바가바드 기타』의 「스베타스바타라Svetasvatara」의 내용이다.
한 명의 신에는 창조자와 창조된 것, 소비자와 소비된 것, 구축과 파괴를 넘어서 는 구축자와 파괴자 등 많은 신비로운 측면이 있다. 신은 어둠 속에도, 빛 속에 도 존재하며 반대되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다. 창조에는 어둠과 빛 중 어느 하 나가 있을 수도 있고 둘 다 있거나 둘 다 없을 수도 있다. 아이가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우주는 불멸의 창조자를 벗어날 수 없다. 하나의 씨앗에서 모든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신이 숨어 있든 나타나든 신처럼 생각하고 신의 기 분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신을 이해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리그 베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누가 확실히 알겠는가?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을까?
신은 이 세계가 형성된 뒤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근원을 알 수 있겠는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서 세계를 보는 사람은
분명히 안다. 혹은 모를 수도 있다.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사마디를 얻으려면 세 개의 구나guna(‘성향’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초월해야 한다.
•�사트바Sattwa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의 ‘무엇’, 순 수성을 의미한다. 서양은 세부사항, 과학의 목표, 연역절차에 초점을 맞춘다. 동양은 귀납적・직관적이며 엄격한 사실보다는 의미를 추구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성을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 어떤 대상에 대해 그 한계를 알 만큼 잘 아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아인슈타인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라자스Rajas는 활동적인 법칙이다. 라자스는 강렬하고 열정적이며 공격 적이고 자신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 혹은 보거나 들은 것에 깊이 감동을 받았을 때 라자스를 경험할 수 있다.
•�타마스tamas는 요가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무력감이다. 게으름, 무관심, 무감동에서, 그리고 ‘꼼짝 못하거나 막혀 있을’ 때 타마스를 볼 수 있다. 타마스는 고정된 것, 움직이지 않거나 움직일 수 없는 것, 정적이거나 변하지 않는 무엇이다.
운전을 배우려면 계기판과 조작 원리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순수성인 사트바이다. 운전은 경험이 많을수록 기술이 발전된다. 이것이 활동적인 법칙인 라자스이다. 운전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 독려하고 시간을 들여 계속해서 흥미와 동기를 유발해야 하는데 이것이 타마스다. 또 자신을 다스리며 필요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일출, 일몰, 구름, 꽃은 사트바이고 밝게 비추는 태양, 움직이는 구름, 활짝 핀 꽃은 라자스이다. 이런 것들 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타마스이다. 사마디에 도달하려면 세 개의 구나를 초월해 그 너머에 닿아야 한다. 구나를 경험한 뒤 이를 거쳐 계속 앞으로 나아갈지 선택하게 되며 이 때문에 구나는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 유용하다.
요가수행을 방해하는 세 가지 마음 상태, 즉 아바스타avastha가 있다.
•�분산된 마음(크쉬프타kshipta)은 세 가지 구나에 의해 흩어지고 혼란스러우며 우유부단한 마음이다.
•�어리석은 마음(무드하mudha)은 사트바와 라자스가 약하고 타마스가 강한 때 로 사람이 듣지만 귀 기울이지 않거나 귀 기울이지만 배우지 않을 때 생겨난다.
•�불안정한 마음(비크쉬프타vikshipta)은 사트바와 라자스는 있지만 타마스가 없어 불안정한 사람의 마음상태이다.
그 외 방해물로 ‘불쑥 떠오르는 마음vikshepa sakthi’, ‘폐쇄적이고 편견을 갖 거나 반항하는 마음avarana sakhti’,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물질주의적인 마음mala’이 있다. 어떤 신체단련이나 인격수양 체계와 마찬가지로 요가도 충 분히 수행하지 않거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다. 한 번에 모든 것 을 하려 들거나 너무 서두르는 벼락치기 요가는 얕은 지식이나 이따금 하는 수행만큼 비효과적일 수 있다.
요가를 반문화의 일환으로 이용하면 제 효과를 다 발휘할 수 없다. 요가의 목표는 극기이지 사회적 시위가 아니다. 요가는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 한 탈출구나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