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존 로크의 『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에세이 』

 

 

갓 태어났을 때의 마음은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석판과도 같은가? 아니면 우리는 이미 지식을 갖추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가? 존 로크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에세이』(이하 『에세이』)에서 이런 물음들을 다룬다. 그의 대답은 우리의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오감을 통해 얻은 정보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경험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런 견해는 보통 경험주의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본유주의(우리 지식의 일부는 본유적이라는 이론)와 합리주의(우리는 오직 이성의 힘만으로 세계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비된다. 로크가 글을 쓰던 17세기는 우리 지식의 근원에 관한 논쟁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 논쟁은 다소 변형되긴 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로크의 『에세이』는 1689년에 출판되자마자 바로 철학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만 해도 4판이나 인쇄되었고, 1735년에는 17판에 이르렀다. 이 책은 복합적이고 폭넓은 저작이며 주요 초점은 인간 지식의 근원과 한계에 맞추어져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고와 실재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것들은 인식론 또는 지식론이라고 불리는 철학분야의 단골 물음들이다. 이 물음에 대한 로크의 대답은 향후의 철학에 오랜 영향을 미쳤으며, 조지 버클리와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를 포함한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로크의 견해와 관련시켜 자신들의 입장을 규정했다.

로크는 자신의 역할을 개념의 혼동을 해소시키는, 그리하여 과학자들 또는 당시의 용어로 자연 철학자들이 인간의 지식에 보탬이 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수underlabourer’의 역할로 묘사한다. 조금은 자기비하적인 이런 표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로크 스스로 설정한 과제의 어려움을 못보고 지나치면 안 된다. 그것은 적어도 인간 지식의 근원과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권위자에 의해 쓰인 것은 무엇이든 진리라고 하는 가정 위에 세워진 철학의 전통 전체에 대한 거부를 내포하고 있다. 로크는 기존의 견해를 뒤엎고 이것을 이치 있는 가설로 대체하는 일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얻었다. 그의 목표는 당시까지 애매하기만 했던 것에 분명함의 빛을 비추는 일이었다. 그의 동기는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 그리고 몇몇 아주 심오한 물음들에 대해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면서 느끼는 흥분감에서 왔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해당 주제들에 대한 마지막 견해가 되리라는 환상을 가진 적이 없다. 또한 인간의 지적 능력 일반에 대해 딱히 낙관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신이 우리에게 신에 관한, 우리의 도덕적 의무에 관한,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단을 주었지만 근본적으로 이성의 힘은 제한되어 있다고 믿었다.

본유적 원리들이란 없다 no innate principles

17세기의 많은 철학자들은 신이 부여한 본유적 원리들, 즉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원리들의 존재를 믿었다. 이런 원리들에는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한다Whatever is, is’처럼 명백히 참인 언명 같은, 로크의 이른바 이론적 원리들이나, ‘부모는 자식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와 같은 도덕적 주장 같은 실천적 원리들이 포함될 수 있다. 로크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본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논증들을 사용했다. 이 논증들 대부분은 인간 마음의 내용은 스스로에게 ‘투명하다’는 근본 가정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서 만일 당신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그 사고의 내용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야만 한다. 로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은 그 사고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떤 사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믿는다. 그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고라는 개념은 무엇이든 무의미하다고 거부한다.

그 어떤 본유적 원리들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그가 사용하는 한 논증은 이렇다. 즉 본유적이라고 주장되는 원리들이 과연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전체적으로 일치된 견해가 없음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모두가 가령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면, 모든 사람이 이것을 근본원리로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로크가 지적하듯이 그런 일반적인 동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린이들도 그 원리가 자신들에게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을 곧바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런 원리는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다. 당신이 검토하고자 하는 어느 원리도 도덕적이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본유적이라고 주장되는 원리들은 어른보다는 어린이들한테서 더 뚜렷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지역적인 관습들에 보다 덜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세계를 덜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유적 원리들은 이런 어린이들에게서 분명하게 인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본유적인 도덕원리들이 있다는 생각은 로크가 보기에 전혀 가망 없는 생각이다. 역사를 흘끗 보기만 해도 우리는 여러 다른 사회와 개인들이 지켜온 매우 다양한 도덕원리들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원리들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이미 심어져 있는 동형의 원리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은 도무지 그럴듯하지 않다.

이런 저런 논증들을 통해 로크는 본유적 원리들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그에게 떠넘겨진 것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이 세계에 관한 사고, 신념, 지식들을 갖추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임무이다. 그의 답은 우리의 모든 관념들은 경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관념들 ideas

로크가 사용하는 ‘관념’이란 단어는 그 누구에게든 의식에 떠오르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당신이 창밖을 볼 때 당신이 보는 것은 ─ 나무 또는 참새 ─ 그 자체로서의 나무나 참새가 아니라 그것의 표상물, 즉 관념이다. 그것은 당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과도 같은 어떤 것이다. 당신이 보는 것은 단지 바깥 세계에 있는 것의 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부는 당신의 감각체계의 창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관념들 전부가 세계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직접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반성관념들이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추리하거나, 기억하거나, 의지할 때 떠오르는 관념들이다.

로크는 우리의 모든 관념은 궁극적으로 경험으로부터 오며, 따라서 우리의 사고내용은 심지어 지각하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반성하고 있을 때의 내용조차도 모두 감각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세계로부터 격리된, 오직 흑백의 감각만을 가졌던 어린 아이는 진홍이나 초록의 관념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한 번도 굴이나 파인애플을 맛본 적이 없다면 그 맛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못하듯이 말이다.

관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다. 그리하여 한 번 우리가 진홍의 관념과 외투의 관념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진홍색의 외투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그런 옷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합관념의 구성요소들인 단순관념들은 모두 오감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의해 지각된 것들에 그 근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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