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어느덧 시작되었습니다
새해가 어느덧 시작되었다고 말할 법 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연말은 몇 차례의 송년회 핑계의 술자리로 지나갔고, 생각해보니 새해의 날이 밝은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명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11월 셋째 목요일인 Thanksgiving day가 지난 바로 다음날부터 모든 라디오에서 일제히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면서 크리스마스 명절이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12월이 되면 종로와 명동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는데, 몇 해 전부터 그런 풍습이 사라졌습니다.
음악기기의 발달로 음악을 다 함께 듣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사라지게 한 요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각각 선택해서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해져서 함께 듣는 풍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는 들뜬 마음으로 함께 보내는 날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케익을 사들고 가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어 그 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여 보내는 풍습이 아직은 남아있는 것 같지만, 전에 비하면 매우 단출해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경직된 현상 때문인지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여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은 고액의 등록금과 취업난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고, 가장들은 비정규직이 해결되지 않아 명절을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개인사업자들은 경제의 침체와 물가의 앙등으로 주머니가 비어 흥청망청 명절을 보낼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게다가 정치권의 추악한 일련의 사태들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발전하지 못한 분야가 정치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에 대거 진출해 있어 정치가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나꼼수’가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만, 그중 하나가 구속되어 청취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나꼼수’를 들으며 사인방의 웃음소리는 내게 늘 슬픈 곡소리로 들립니다.
그것은 웃는 소리가 아니라 절규입니다.
슬픔을 안으로 삼키는 자조적인 노력입니다.
선한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리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사인방은 모두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아냥거리는 입장에 스스로를 놓고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연일 터져 더욱 국민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언론에 알려진 비리는 불과 일부이겠지요.
모든 비리가 언젠가는 터져 나올 텐데 그땐 그 분노를 국민은 어떻게 삭여야 할까?
이런저런 어수선한 가운데 연말을 보내고 나니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해를 맞게 된 느낌입니다.
김근태 민주주의 투사가 우리의 곁을 떠나면서 새해 벽두부터 쓸쓸해지기 시작합니다.
봄은 아직 멀었는데,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총선에서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이 녹여질까?
새로운 희망이 움틀까?
그런 바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새해가 어느덧 시작되었다고 말할 법 합니다.
늦게나마 여러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