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바루흐 드 스피노자의 『 윤리학 』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아주 특이한 책이다. 『윤리학』에는 정의, 공리, 명제, 계系, 예증 같은 유클리드 기하학 용어가 즐비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하학적 용어 너머에는 우주에서 우리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매력적이고 심오한 시도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의 정식 제목은 『기하학적 방식으로 입증한 윤리학Ethics Demonstrated in a Geometrical Manner』이다. 철학서를 기하학 교과서의 형태로 집필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스피노자는 다양한 가설에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추론한 유클리드의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클리드의 방식에서 결론은 전제에서 어김없이 투명하고 우아하게 도출되었다. 스피노자가 도출한 결론에는 여러 정의의 진정한 함의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다. 그가 내세운 전제를 받아들이면 그가 얻은 결론도 수용해야 한다. 그의 추론이 옳다면 말이다.
이 책에 거침없이 등장하는 기하학 용어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의 논증은 기하학적 논증 특유의 순수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난해한 책 안에는 거대한 힘에 대한 철학적・�심리적 통찰이 담겨있다.
스피노자는 흔히 합리론자로 평가된다. 그는 우주에서의 우리 위치에 관한 지식을 오직 이성의 힘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경험과 관찰을 지식의 원천으로 믿은 경험론자들과 아주 달랐다. 스피노자는 이성을 통해 우주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우주가 이성적 질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우주의 체계는 결코 우연히 이뤄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필연적 이유가 있다. 불완전한 감각적 경험은 결코 우주를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스피노자가 과학적 연구를 경시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광학과 연관된 렌즈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그가 만든 렌즈는 과학적 지식을 넓히는 도구인 현미경과 망원경에 쓰였다.
제목 the title
앞서 살펴봤듯이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기하학적 방식으로 입증한 윤리학』이다. 하지만 이 책의 모든 부분이 흔히 우리가 『윤리학』에서 연상하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1부의 꽤 많은 부분이 실체(혹은 본질)와 신에 관한 내용인데, 이 두 가지는 결국 동일한 것으로 판명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것은 형이상학에 해당할 것이다. 스피노자의 주제는 우주와 우주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 즉 실재의 본성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형이상학과 윤리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실재의 본성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과 범신론 God and pantheism
『윤리학』의 도입부에서 스피노자는 실체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일원론, 즉 하나의 실체만 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신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한다. 신은 자연을 창조하지 않았다. 신이 바로 자연이다. 스피노자는 ‘신 또는 자연’을 논하는 동안 두 가지를 동일시한다. 사유와 연장extension(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신의 무한한 속성 중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두 가지 속성이다. 스피노자는 복잡한 논증을 통해 이런 입장을 옹호한다. 모든 것이 신 안에 존재한다는 그의 결론은 흔히 일종의 범신론으로 간주된다. 더욱 예리한 해석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주장은 신이 세계와 다름없다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모든 속성이 세계에 표현되어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세계와 신이 동일하다고 보는 노골적인 범신론과는 다르다.
스피노자의 신학적 입장은 확실히 신의 본성에 관한 기독교나 유대교의 정통교리와 크게 다르다. 스피노자는 1632년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이었다. 그는 1656년에 유대교 신앙을 저버림으로써 유대공동체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때문에 사후에야 비로소 『윤리학』이 출판될 수 있었고, 당대의 일부 사람들이 그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신과 육체 mind and body
스피노자는 인간 존재의 정신적 측면과 육체적 측면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동시대인인 데카르트의 철학적 업적을 익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데카르트는 많은 부분에서 견해가 뚜렷이 달랐다. 정신과 육체가 전혀 별개의 사물이라고 주장한 데카르트와 달리 스피노자는 정신과 육체는 동일한 사물의 두 가지 불가분적 측면이라고 단언했다. 즉 정신은 육체와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일 수도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정신은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양태이다. 데카르트의 설명과 달리 정신과 육체는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정신과 육체는 단지 동일한 실체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다. 이런 관점의 논리적 귀결은 모든 물리적 실체는 정신적 측면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간의 속박 Freedom and Human Bondage
스피노자의 도덕적 가르침의 핵심은 자유의 개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원인과 결과의 사슬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 그리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선행적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 당신은 지금 이 책을 선택해 읽고 있지만, 스피노자의 설명에 따르면 당신의 선택은 이미 선행적 결정과 물리적 사건 등에 의해 정해져 있다. 당신의 결정은 아무런 원인 없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신의 행동에는 선행적 원인이 없다는 점에서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과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에는 희망이 없다. 그렇지만 스피노자는 우리가 정념의 굴레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념의 굴레에서 벗어날 경우 우리는, 외적 원인가 아니라 내적 원인에 의해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도덕적 행동은 정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작동한다. 정념은 우리를 이리저리로 몰아감으로써 우리를 무기력한 희생자로 전락시킨다. 그런 정념의 수동적인 수단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인간의 속박이란 자기 행동의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이 처한 상태이다. 그들은 외부적 원인에 의해서만 움직이며,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날아가는 돌과 같다. 우리가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서 외적 동기가 아니라 내적 동기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려면 행위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감정의 원인을 인식하면, 그 감정은 더 이상 정념의 형태로 우리를 옥죄지 않는다. 『윤리학』에는 이런 점을 일깨우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일종의 심리요법을 연상시킨다. 정념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자유로운 결정에 더 이상 원인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정한 원인을 이해하면 그 원인은 내면화되며, 우리의 이해를 통해 원인이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원인을 초래하는 행동은 여전히 결정된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이 특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행적으로 결정되는 우리의 행동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