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맥호벡Frank MacHovec의 『한 권으로 읽는 동양철학』(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공주의 머리와 승려의 여인
공주의 머리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몹시 속상한 공주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공주의 가족은 얼굴이 분명 보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공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주는 거예요.”
거울이 앞에 놓여 있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건 내 사진이에요. 머리는 맞지만 분명 내 머리는 아니에요.”
공주의 아버지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딸을 마을 광장 기둥에 묶어 놓고 머 리가 잘 붙어 있다고 말해서 공주를 안심시켜달라는 내용의 팻말을 행인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적힌 대로 했지만 공주를 더욱 속상하게 할 뿐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볼 수가 없어요. 느낄 수도 없어요. 머리가 없는 게 틀림없어요.”
바로 그때였다.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다가와 팻말에 적힌 글을 읽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지팡이를 휙휙 돌리더니 공주의 머리를 냅다 내리쳤다. 공주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자 노인이 말했다.
“바로 그게 당신의 머리요!”
오도의 불꽃
수백 년 동안 전해오는 이 우화는 엄한 사랑 혹은 현실요법의 한 사례다. 때로는 단순한 행동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 때로는 생각보다 신체적 감각이 더 많은 걸 깨닫게 한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심리치료에 직면 直面을 사용하는 프리츠 펄스의 게스탈트 요법에서도 이 우화는 가장 보편적 인 사례가 될지 모른다. 경험이 치료인 것이다!
승려의 여인
승려 두 명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음식 시주를 받았다. 우기였으므로 거리가 온통 진흙탕이었다. 한 매력적인 여인이 값비싼 비단옷을 망칠까 염려하여 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 승려가 망설임 없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여인이 승낙하자 그는 여인을 번쩍 안아서 길 건너편에 내려주었다. 그러자 다른 승려가 몹시 언짢아했다. 그리고 사찰로 돌아가는 내 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여인과 접촉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우리는 여인의 근처에도 가서는 안 되네. 특히 아름다운 여인은 더더욱 안 되지. 절 대 손을 대서는 안 돼.”
사찰 입구에 도착하자 첫 번째 승려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보게, 난 몇 시간 전에 그 여인을 잠깐 들었다 놨을 뿐이네. 하지만 자네 는 아직도 그 여인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는가.”
오도의 불꽃
수세기 동안 선사들은 새 신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습니까?”
혹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짐을 너무 많이 가져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버리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거든요.”
이는 선불교에서 끝내지 못한 마음의 고민, 풀지 못한 문제,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인간관계를 말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근심 걱정 없는 시간 을 기대하며 휴가를 계획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짊어지고 온 긍정 적, 부정적 짐을 깨닫고 이내 실망하고 만다. 선불교에서는 가벼운 여행이 최선이라고 가르친다. 오직 이 순간만이 현실이다. 어제는 영원히 지나가버렸으며 내일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