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맥호벡Frank MacHovec의 『한 권으로 읽는 동양철학』(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의 마음

거불달마와 선불교

선불교의 전설적인 창시자는 달마達磨이다. 이 ‘푸른 눈의 승려’가 520년 인 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푸른 눈’이란 기록만 보더라도 선불교가 당시 전 통 불교에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 짐작할 만하다. 푸른색은 지혜를 상 징했으니 말이다. 달마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의 음역으로 보리달마菩提達磨라 하며 달마가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의 셋째 왕자 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에 통달했다. 중국에 가서 북위의 낙양 에 이르러 동쪽의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 이 본래 청정하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어로는 ‘찬Chan’이라 발음하는 선불교는 송나라(860~1279) 때 전성기 를 맞았다. 6세기 중국에서 공부하던 일본 승려들이 자국에 전파하면서 비로 소 선불교로 불리게 되었다. 명암영서明菴栄�西(1141~1215)는 일본에 임제종臨濟宗(Rinzai)을 설립한 사람으로 통찰력을 얻는 방법으로 수수께끼와 반박을 사 용했다. 그리고 도원선사道元禅�師는 1200년경 크게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대승 불교의 경전에 기초를 둔 조동종曹洞宗(soto)*을 설립했다.

임제종과 조동종 모두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불교의 찬Chan과 선 Zen이란 명칭은 산스크리트어 디야나dhyana에서 파생된 말로 명상적인 마음 을 의미하며, 붓다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선불교는 불교가 변형된 것이지만, 통찰력을 얻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붓다의 진심 어린 가르침을 더한다. 상위 의식을 체험하기 위해 현실을 예리하게 연구하는 점을 들어 대승불교와 도 교를 합쳤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임제종은 선불교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마라. 그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자유를 얻으라.

선불교는 서양의 물질주의와 상반되는 부분이 많다. 선불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명칭을 붙이거나 분류하지 않는다. 세상을 소유하려고 하 지 않으며 세상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반응하지도 않고 세상을 바꾸려 고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선사禪師라면 ‘벽 틈에서 자라는 꽃이여/내가 너를 뽑으리’로 시작하는 영국의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를 읽으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즐거움을 위해 꽃의 생명을 함부로 취한다는 내용 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보는 이가 없더라도 아름다움을 마음 껏 발산하도록 꽃을 살아 있는 그대로 자연에 두라고 가르친다.

선불교의 역설

선불교가 추구하는 건 하늘처럼 펼쳐진 마음이지만 실제로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아예 사라지고 만다.’ 전형적인 선불교의 역설 로, 마음을 채우려면 반드시 마음을 먼저 비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전통적인 가르침이 해답은 아니다. 선은 귀납적・직관적이며 때로는 반주지反主知적이다. 선은 배우기보다는 터득하는 것이다. 이 번뜩이는 찰나의 통찰력을 일본어로 사토리satori, 즉 오도悟道, 돈오頓悟라고 하는데 미지로의 신비로운 도약이나 상상의 통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도 같다.

선불교의 무념無念은 서양인의 마음에 비하면 투명한 유리잔이나 거울과 같다. 선불교의 마음은 판단하지 않고 제3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이다. 서 양인은 명칭을 붙이고 분류하고 해석하며 그리고 정확하게 보고 듣지만 정작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선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 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아야 할 것을 이미 모두 알고 있으며 어쩌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잔은 이미 차고 넘친다. 선불교의 언어 는 직접적이며 때로는 거칠고 충격적이고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오도, 즉 도의 깨달음은 살짝 찌르는 것일 수 있고, 쿡쿡 찌르는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번개를 맞은 것처럼 강렬한 것일 수도 있다.

무념의 단순성

선불교는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유명한 푸른 눈의 수도승 달마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선사들이 계승했다. 7세기에는 5대조 홍인 선사弘忍禪師가 계보를 이어받았는데 6대조를 선발해야 할 시기가 되자 홍인 선사가 제자들에게 선불교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글을 짓게 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두 글이 뽑혔는데, 그중 하나인 신수선사神秀禪師의 글이 다음과 같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나니

늘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하나라도 묻지 않도록 하라.

 

그리 나쁘지 않다! 선을 잘 드러낸 글이다. 신수선사는 홍인선사의 수제자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혜능慧能은 부엌에서 일했고 신수만큼 입지가 탄탄한 건 아니었다. 혜능의 글은 신수의 글에 대한 화답이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명경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있겠는가?

공안公案(화두)

선종은 도를 터득하게 하기 위하여 생각하게 하는 문제인 공안을 제시한다. 공안은 통찰력을 키우는 수수께끼로 연역적 추론 혹은 알고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 가장 뛰어난 답은 결코 과학적 사실이나 사회적 관습에 근거하지 않는다. 공안은 명상의 인식, 즉 변화적이고 초월적인 신비로운 도약을 목표로 한다. 공안이 제 기능을 다하면 별안간 터져 나오는 오도를 얻게 되면서 절로 “아하!”라고 감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도는 지성과 이성, 사실 을 배제할 때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다음 사례를 통해 잘 드러난다.

 

제자 대오大悟란 무엇입니까?

스승 대오란 텅 빈 집에 침입한 도적과도 같다.

제자 경전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스승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왕도란 없다. 네 앞엔 사시사철 푸르른 산이 우뚝 서 있을 뿐이지. 어느 방향을 택하든 매우 즐겁게 산책할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탐구하고 물질과 소유 에 연결된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려야 한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다”는 서양 격언은 선불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불교에서는 “그걸 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가르침을 덧붙인다. 깨달음을 얻은 마음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텅 빈 집, 즉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하늘처럼 넓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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