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맥호벡Frank MacHovec의 『한 권으로 읽는 동양철학』(도서출판 知와 사랑)

 

 

 

 

진리와 지혜의 글이나 말은 표현 방법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다. 그것 은 시간, 언어, 문화를 초월한다. 우리에게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성서와 철학서는 도덕적 면에서 유사한 통찰과 지혜를 제시하며 출처와는 상관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동서양에서 영적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예로부터 차이가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

서양은 사회적이며 집단 중심적이다. 다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며 종 교의식을 행하고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등 집단으로 행동하는 것을 매개로 도덕을 고양시켰다. 반면 동양은 개인 중심적이었다. 명상하고 정신을 집중 하는 데 중점을 두어 통찰력을 기르고 인격을 고양했다. 동양의 방법은 정신 적이지만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서양의 방법은 지나치게 물질적이며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다음은 동서양의 방 법을 비교한 것이다.

동양 서양

느림 빠름

조용함 소리를 냄

사색적 반응적

수동적 능동적

내향적 외향적

직감에 따름 사실에 의거

보존적 소비적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서양인은 “한번 겨뤄보자!”라고 하겠지만, 동양인은 “둘 다 아니다” 혹은 “그것을 아는 게 왜 중요한가?”라고 할 것이다. 인류가 역 사에서 지금까지 경험해온 모든 것을 참고하여 결론짓는다면 “둘 다 아니면 서 둘 다 맞다”가 타당한 답이 될 것이다. 과학이 진리를 실험하고 다듬은 결 과 종교와 영성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종교와 영성이 윤리의 기준이 되어 거꾸로 과학의 질을 높일 수 있었고, 그 결과 과 학은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기는커녕 고귀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서양인이 대담하게 지구 구석구석과 우주를 탐험할 때, 동양인은 한곳에 머물면서 내면의 세계를 탐험했다. 서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우주비행사라면 동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명상가일 것이다. 자동차에 탄 채 주문하는 패스트푸드점은 서양인의 조급증을 상징하는 데 반해 느긋하게 즐기는 일본의 다도는 동양인의 여유 있는 명상을 상징한다. 서양인은 강물 을 거스르지만 동양인은 강물의 흐름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동서양의 문화 및 과학기술에 대한 교류가 빈번해지고 왕래가 잦아지면서 동서양은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동양 곳곳에 서양에서 건너온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패션 아울렛이 들어섰고 서양 곳곳에 동양에서 건너온 요가, 태극권, 동양 식당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일본산, 한국산 자동차 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서양 종교에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1958년 6월 틸리히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에 기고한 「종교의 잃어버린 경지The Lost Dimension in Religion」라는 글에서 “서양의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며 그렇게 된 것은 그 종교 자체에 원인 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양의 종교가 위대한 상징들을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서에 기록된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싸움에서 이 미 패배했다”고 설명했다.

축자주의literalist approach*는 서양의 종교인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축자주의 자들은 갈등을 양산하고 무수히 많은 변형된 교파들을 형성했다. 각 교파들 은 자신만이 가장 순수한 영적 진리를 가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양의 종교 는 이와 매우 다르다. 동양의 종교는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므로 언뜻 보기에 관념적이고 신비롭게 보일 것이다.

1925년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저서 『과학과 근대 세계 Science and the Modern World(1926)에서 “기독교는 항상 형이상학을 갈구하는 종교다. 불교는 종교를 만들어내는 형이상학이다. 불교는 응용형이상학의 역사 에서 가장 정통적인 사례다”라고 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로 정신분석학 에서 인간학적 방법을 제창한 루트비히 빈스방거, 캐나다의 진보적인 정신과

* 원문의 글자 하나하나를 좇아 그대로 해석하는 방식. 의사 리처드 모리스 벅, 독일 태생의 유대계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 미국 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맨,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미국의 의학자 윌리엄 페리 머피,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로버트 이반 온스타인과 찰스 타트, 독일 태생 의 정신신경과 의사 프레더릭 솔로몬 펄스 등 서양의 대표적인 인성 이론가 들은 동양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오리엔테이션은 ‘방향’, ‘지향’ 등 의미가 다양한 단어다. 이 단어는 새로운 직장이나 일에 적응하거나 새롭게 생각을 조율할 때도 사용된다. 또 지도나 건물 등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고대에 오리엔트the Orient는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땅과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책의 중심은 동양의 사상이며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는 동양의 사고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다의성과 숨은 뜻은 신비주의 사상의 일부분이며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서 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붓다는 진리를 가부좌를 틀고 아름다운 꽃 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는 것으로 정의했으며, 또 다른 전설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진리는 다이아몬드처럼 빛의 강도와 방향 그 리고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지만 모든 방향으로 빛을 발한다. 절대 진리는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완전체로서의 다이아몬드일 것 이다. 붓다의 말은 진리이며 모두 감각의 경험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의 답변을 완전한 진리로 제시한 적은 없다. 이 책은 이러한 동양의 접근방법에서 알 수 있는 아시아의 지혜로 진리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깨달음

빛은 자연의 현상이다. 햇빛도 있고 달빛도 있다. 불을 피우고 불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운 건 인류 역사의 큰 진보였다. 빛은 지식과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며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빛이 생겨라!”(「창세기」 1:2) 하고 명령했다. 신비주의 사상 에서 빛은 영적 깨달음을 나타낸다. 「시편」의 저자는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 119:105)라고 했다. 예수는 말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복음」 8:12)

 

사도 바울도 말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서」 13:12)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복음」 5:16)

 

고대의 다른 문명국가 사람들도 진리와 지혜를 상징하는 데 빛을 사용 했다. 이집트인은 최고의 신은 태양에서 왔거나 태양 그 자체라고 믿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경전 『젠드아베스타Zend-Avesta』는 선과 악의 힘 을 빛과 어둠의 힘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선을 선택한 스펜타 마이뉴spentas mainyu는 빛의 힘을 이끌었고 악을 선택한 아흐리만ahriman은 어둠의 힘을 이끌었다. 유대인 공동체 가운데 사해문서*를 작성했다고 여겨지는 에세네파 Essenes도 빛과 어둠의 힘을 언급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재판받을 때 내면의 빛이 자신을 인도했다고 말했다. 붓다는 인생의 목표가 깨달음을 얻는 것이었다고 했으며, 그의 제자들은 그를 ‘깨달음을 얻은 자’라 불렀다. 선불교 승려들은 사토리satori를 추구했는데 사토리는 번쩍이는 통찰 의 빛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교 가운데 영적 빛을 더욱더 갈구하는 신도 집단이 있다. 영지주의 크리스천Gnostic Christians, 하시디즘 유대인Hassidic Jews, 이슬람교의 수피교도Sufi Muslims와 힌두교의 요가수행자yogic Hindus, 선불교 도Zen Buddhists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영적 경험을 고무하고 상위의식에 이르기 위해 의식을 행하기도 하지만, 영적 깨달음을 집단적 경험보다는 개인적 경험으로 본다. 이들에게 영적 진리는 의식儀式, 가르침, 경전읽기 그 이 상이다. 비록 이러한 활동이 더 깊은 뜻을 깨닫게 하지만 말이다. 숨겨진 진리는 표면적인 경전과 인간의 상호작용 이면에서 발견된다. 영국의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Thomas는 이를 “해가 비치지 아니하는 곳에 빛은 터지고”라고 묘사했다. 선불교도들은 이를 “제3의 눈으로 보고 제3의 귀로 듣는다”고 설명 한다. 신비한 빛은 구하는 것이지 가르침이나 관념이 아니다. 배우는 것이 아 니라 노력해서 획득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