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처럼 가부장적인 신은 초자아가 겪는 위기에 대한 해답이다
6월 10일 금요일, 프로이트는 애완견 륀을 만나기 위해 외출했습니다. 륀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라드부르크 그로브에 소재하는 검역소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만남까지도 기사화하는 매체가 있었습니다. ‘그 무엇도 위대한 과학자와 애완견 친구를 떼어놓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을 칭송하는 영국인 대부분이 자신의 저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온전히 이해했다면 그들은 분명 프로이트에게 분노했을 것입니다. 마이클 몰나르Michael Molnar는 오스트리아의 스포츠 신문 『레프리 Refree』에서 검역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동물이 그렇게 행복해하는 건 처음 보았습니다. 주인에게 모든 걸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프로이트 박사는 한 시간 내내 강아지와 놀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상의 모든 애정을 쏟아 붓는 것 같았습니다. 그 연세에 매우 긴 여행이었을 텐데도 그분은 가능한 한 자주 륀을 보러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로이트는 1927년 『환상의 미래』에 종교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서구의 신앙을 압제적 가부장제에 대한 향수병 같은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했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돌아와 주기를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프로이트는 거의 모든 사람이 절대적인 안전, 아니 절대적인 안전의 환상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아이에게 완벽하게 느껴지는 보호와 함께 반박할 수 없이 명쾌한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부모도 결함이 있고, 정확하지 못하며,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필연적으로 믿음을 잃게 됩니다. 그들은 자식이 어릴 적에 본 완벽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연구 전반에 걸쳐 주장한 것처럼 사람들은 한때 자신의 감정을 충족시켰다고 느낀 대상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프로이트 개념의 핵심입니다. 주어진 목적이나 개념에 전념하고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것을 발견한 원아는 자신의 모든 힘이 사라지지 않도록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애국자는 옳든 그르든 자신의 나라를 죽도록 사랑합니다. 여자는 한때 자신에게 기쁨을 준 남편이 자신을 속여도 꾸준히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간 자식을 위해 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현실이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갔을 때 받은 첫 충격과 그 이후로도 지속되는 충격은 환상을 통해 재구성됩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뛰어난 존재,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분명히 아는 인물의 보호를 박도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보다 만족스러운 상황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인물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판단이 말할 때, 정신은 반발하면서 자신의 모든 희망을 일치시킨 최상의 존재를 재창조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종교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물론 정치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이 최상의 허구를 날조하여 적대적이기만 한 속수무책 세상에 저항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재자처럼 가부장적인 신은 초자아가 겪는 위기에 대한 해답입니다. 초자아는 최악의 상태일 때 무의식 상태가 됩니다. 그것은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잔인해지다 못해 가학적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1930)에서 초자아는 우리가 실제로 관습에 도전할 때뿐만 아니라, 그런 의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를 벌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행동이 아닌 갈망까지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외부로 표출된 초자아, 즉 가부장적인 하늘의 신은 잔인하고 지나친 요구를 하기도 하지만 인류를 위해 계율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의 성서와 예언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 그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는지, 심지어 무엇으로 그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 깨닫습니다.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신도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지나치게 복잡한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정의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땅 위의 번영과 다가올 구원을 보장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 l'Avenir de l'illusion』(1927)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신성한 신이 내린 자비로운 법칙은 위험으로 가득한 인생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가라앉힌다. 도덕적 세상의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정의가 요구하는 것, 인류 문명이 여전히 충족하지 못한 것들을 완성한다. 그리고 미래 인류의 생명 연장은 이러한 희망이 실현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프로이트는 인류의 희망을 통해서만 진리를 발견하고, 그들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 후반기에 그의 주요 가설 중 하나는 사람들이 순간순간, 매일매일 누릴 수 있는 즐거움보다는, 자신보다 위대한 존재와 결합함으로써 진리를 구하려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극적이고 다양하며 복잡한 것, 즉 풍부하고 신기하지만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을 접하는 것보다 절대적인 의미를 구했을 때 좋은 기분을 느낍니다. 정해진 답이 없는 존재의 대가는 극심한 불안입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그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다음과 같은 히틀러의 말은 적절해보입니다.
“군중은 청원자보다 지휘자를 사랑한다. 그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버려진 느낌을 받기 쉬운 자유보다는 규칙을 참고 지키는 것에 큰 만족을 느낀다.”
후기 집필 과정에서 프로이트는 어머니를 향한 오이디푸스의 열망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왕을 필요로 하는, 가부장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싶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