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 군주론 』
『군주론』이라고 하면 아마 무자비한 자기계발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때때로 위선과 냉혹함을 옹호했을지라도, 이 책에는 보다 미묘한 의미가 담겨있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힘과 간계를 구사하는 시점과 방식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는 강하고 유능한 통치자가 어떻게 국익에 가장 이바지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의 조언은 다름 아닌 군주들을 겨냥한다. 군주의 행동은 백성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마키아벨리에게 바람직한 군주상은 지나치게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군주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 재빠르고 능숙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에게 최선이란 기존의 도덕을 무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마키아벨리는 고국인 피렌체에서 정치가로서 성공을 맛보았다. 하지만 1513년, 당시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고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피렌체 밖으로 추방되었다. 그가 『군주론』을 집필한 동기는 새로운 군주들에게 정치적 조언자로서의 자격을 입증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군주론』은 치열한 정치적 삶에 복귀하는 데 발판으로 삼기 위한 일종의 명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군주론』은 실패한 책이었다. 그는 예전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마키아벨리가 사망한 직후인 1532년에 출판된 『군주론』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오늘날 이 책은 정치에서 ‘더러운 손’의 불가피성에 관한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적’이라는 수식어는 흔히 교활하게 이기심을 추구하는 행위를 묘사할 때 쓰이지만 여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거울mirrors for princes’이라는 장르의 소책자로, 통치자를 고무시키고 권고하기 위해 쓰였다. 군주를 위한 거울은 르네상스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흔히 용기와 동정심 같은 미덕을 권면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전혀 달랐다. 그는 성공적인 군주는 선량함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필요할 경우에는 기민하고 잔인한 행동을 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항상 정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롭지만, 군주는 필요할 때에만 자신의 약속을 지키면 된다. 군주는 다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을 알아차리고 피하기 위해 여우처럼 행동해야 하고, 때로는 사자처럼 겁을 줘서 주변의 늑대들을 쫓아버릴 필요도 있다. 마키아벨리가 던진 메시지는, 군주는 야수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는 백성들에게 도덕적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인본주의적인 전통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의 본성 human nature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낮게 평가한다. 피렌체 역사와 고전 문헌에 대한 지식과 나름의 관찰을 바탕으로 그는 인간이란 원래부터 부정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본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거짓말을 하며, 위험을 회피하려 들고 탐욕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군주가 효과적으로 통치하려면 두려움을 활용해야 한다. 즉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믿을만한 권력의 원천이 아니다.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고마움의 끈을 저버리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동시에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행위의 당위성이 아니라 행위의 현실성에 관심이 있었다. 요컨대 군주가 인간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알지 못하면, 십중팔구 실패를 맛본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쉽게 약속을 깬다. 군주는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고자 애쓸 필요가 없으며, 약속을 한 사람을 믿는 것 또한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군주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나 기독교에서 비롯된 기존의 도덕관과 전혀 다른 규범을 따라야 한다.
외관은 군주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들은 피상적인 특징에 반응할 뿐, 군주의 진정한 모습을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군주는 설령 자신의 참모습과 전혀 다를지라도 교묘하게 꾸며낸 가면을 써야 한다.
비르투 virtù�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개념은 ‘역량prowess’으로 번역되는 이탈리아어 비르투virtù�이다. 비르투는 미덕virtue의 어원인 라틴어 비르투스virtus에서 비롯되었지만, 『군주론』에서는 아주 다른 의미로 쓰인다. 『군주론』을 관통하는 마키아벨리의 목표는 군주가 비르투라는 자질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비르투는 국가의 안전과 지속적인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재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거짓 약속을 하는 것, 나를 위협하는 자들을 죽여 없애는 것, 그리고 심지어 필요할 경우에는 내 편도 처치하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비르투를 갖추면 통치자로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비르투를 보여주는 통치자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지는 않는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우리 삶의 절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적 사건에 좌우된다. 즉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해도 운이 나쁘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운명은 밀려드는 강물과 같다. 강물이 가득 들어차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강물이 가득 들어차기 전에 행동을 취하면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미리 대비하지 않을 경우에 운명적 사건들은 큰 피해를 몰고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운명이 젊고 용감한 자들의 편이라고 믿는다. 비유컨대 운명은 젊고 용감무쌍한 남자의 접근에 반응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을 압도하고 위압하는 대담한 남성들에게 응답한다. 비르투는 남자가 운명을 정복하기 위해 발휘하는 남성적 자질이다.
마키아벨리가 비르투를 보여주는 군주상으로 제시한 인물은 체사레 보르자였다. 그의 역량, 즉 비르투는 오르시니 가문 사람들을 시니가글리아로 유인해 처치해버릴 때 발휘되었다. 보르자의 여러 행동 중에서 마키아벨리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듯한 것은 그의 수하들 가운데 한 사람을 처분한 것이었다. 로마냐 지방을 장악한 뒤 보르자는 잔인한 성격의 충복 레미로 데 오르코를 책임자로 임명했고, 오르코는 그 지역을 신속하게 무력으로 평정했다. 그런데 보르자는 그런 무자비한 방식은 점점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쏠리기 시작하는 증오의 싹을 자르기 위해 그는 오르코를 죽이고 시체를 두 토막 내어 광장에 전시하였다. 그 잔인한 광경 하나만으로 보르자는 로마냐 지방 주민들을 달래는 동시에 충격을 선사했다. 마키아벨리는 보르자를 잔인성을 노련하게 활용한 인물로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보르자를 범죄자나 다름없고 미덕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잔인무도한 폭군 아가토클레스와 비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