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성문제Hierachy Problem
매우 정확하게 측정된 질량변수mass parameter(기본입자들의 질량을 결정해주는 약력규모질량)는 물리학자들이 대체로 생각하는 이론적인 예측값의 1경분의 1이다. 즉 1016 배나 작다. 고에너지이론으로부터 약력규모질량을 예측한 물리학자라면 이것이(모든 입자의 질량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질량값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계층성문제는 입자물리학 이해를 가로막는 커다란 구멍으로 보인다. 힉스입자의 질량 혹은 약력게이지보존의 질량이 측정된 것과 같은 값을 갖기 위해서는 표준모형은 속임수 같은 보정을 포함해야 한다. 계층성문제에 대한 답은 모두 새로운 물리법칙을 포함하고 있다. 무엇이 힉스장의 역할을 해서 역전자기 대칭성을 깨뜨리는지를 밝히는 일로부터 의미심장한 물리학이 도래할 것이다. 새로운 물리현상이 약 1테라전자볼트의 에너지에서 나타날 것도 분명하다.
계층성문제는 물리법칙을 초고에너지로 외삽하기에 앞서 저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임을 가르쳐준다. 지난 30년 동안 입자물리학의 이론가들은 약력규모에너지(약전자기 대칭성이 깨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를 예측하고 확보하는 이론적 구조를 탐구해왔다. 물리학자들은 계층성문제에는 답이 있고 그 답이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이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고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통일이론에서 입자들의 질량은 너무나도 다른데, 그 차이는 10배 정도가 아니라 10조 배나 된다. 대통일이론에서 약전자기 대칭성을 깨는 힉스입자는 약력규모 정도의 가벼운 입자이다. 문제는 이 힉스입자가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다른 입자와 짝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새로운 입자는 대통일 규모 정도의 질량을 갖는 엄청나게 무거운 입자여야 한다. 즉 대통일 힘 대칭성GUT force symmetry으로 연결된 두 입자의 질량차가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대통일이론에서 대칭성으로 연관된 두 입자는 서로 다르다고 해도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는 약력과 강력이 고에너지에서 교환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힘은 궁극적으로 같아야 한다. 따라서 강력과 약력이 통일되면 힉스입자를 포함해 약력으로 상호작용하는 모든 입자는 강력을 느끼는 입자와 짝을 이뤄야 할 뿐 아니라 원래 힉스입자가 하는 상호작용과 비슷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러나 힉스입자와 연관된 이 강력을 느끼는 새로운 입자는 큰 문제를 갖고 있다.
강력 전하를 띤 힉스 관련 입자는 쿼크나 경입자와 동시에 상호작용하여 양성자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 붕괴를 막으려면 강력 전하를 띤 힉스 관련 입자(이 입자가 두 개의 쿼크와 두 개의 경입자 사이에서 교환되는 것이 양성자 붕괴의 조건이다)는 굉장히 무거워야 하며 약 1천조 기가전자볼트의 질량을 가져야 한다.
입자는 빈 공간을 그냥 통과할 수 없다. 가상입자virtual particle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입자의 원래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어떤 물리량이든 가능한 모든 경로에서 오는 효과를 더해야 한다. 가상입자들 때문에 힘의 세기가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힘의 세기와 달리 힉스입자의 질량의 경우에는 가상입자의 효과가 너무 크게 나타나서 실험이 요구하는 값과 큰 차이를 보인다.
힉스입자가 질량이 대통일이론 규모 정도 되는 무거운 입자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힉스입자들이 취하는 경로들 중 일부는 무거운 가상입자와 반입자를 토해내는 진공vacuum을 필요로 한다. 이 경로를 지나는 동안 힉스입자는 잠시 동안 이 입자들로 변하게 된다. 진공에서 휙 생겨났다 휙 사라지는 무거운 입자들은 힉스입자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힉스입자가 실제로 갖는 질량을 결정하려면 가상입자가 없는 단순한 경로에 무거운 가상입자들을 포함하는 경로를 더해야 한다. 이는 힉스입자의 질량을 애초 원한 값보다 1013 배나 큰 대통일이론의 무거운 입자 질량만큼이나 커진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이론이 되려면 약력게이지보존의 질량이 약 250기가전자볼트가 되어야 한다. 이는 개개의 대통일이론의 질량 효과가 1013 배나 크더라도 이 엄청난 크기의 값을 모두 더하면 이들 중 일부는 음수여서 최종적인 답은 대략 250기가전자볼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가상입자 하나라도 힉스입자와 상호작용하게 되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된다.
표준모형에 중력이론을 결합한 이론이 엄청나게 다른 두 질량 규모를 포함한다. 하나는 약 250기가전자볼트의 에너지로 약전자기 대칭성이 붕괴되는 약력규모 에너지이다. 입자가 이보다 낮은 에너지를 가질 경우 약전자기 대칭성이 깨지게 되면 약력게이지보존과 기본입자들(쿼크와 경입자)이 질량을 얻게 된다. 다른 에너지는 약력규모 에너지보다 1016 배, 즉 1경 배나 더 높은 에너지인 1019기가전자볼트 크기의 플랑크 에너지이다. 플랑크 에너지는 중력의 상호작용 세기를 결정한다. 뉴턴 법칙에 따르면 중력의 세기는 플랑크 에너지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그리고 중력의 세기가 작기 때문에 플랑크 질량(E=mc2이라는 식에 의해 플랑크 에너지와 연관된다)은 엄청나게 큰 값을 갖는다. 엄청나게 큰 플랑크 질량은 굉장히 작은 중력과 등가이다. 플랑크 질량이 너무 큰 까닭에 중력의 세기는 미약해지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 대부분의 입자물리학 계산에서 중력의 세기는 무시되었다. 입자물리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왜 중력이 입자물리학에서 무시될 정도로 세기가 작은가 하는 점이다.
두 전자 사이의 중력(인력)은 두 전자 사이의 전기력(척력)보다 1조 배의 1조 배의 1조 배의 1억 배(10-44 배)나 작다. 두 힘의 세기가 비슷해지려면 전자의 질량이 지금보다 1조 배의 100억 10(10-22 배)나 커져야 한다. 플랑크 질량은 전자의 질량보다 훨씬 크다. 이는 중력이 알려진 다른 힘들보다 엄청나게 약한 것을 의미한다. 양자장이론에서는 힉스입자와 상호작용하는 입자는 모두 힉스입자의 질량을 플랑크 질량, 즉 1019기가전자볼트로 키울 수 있는 가상경로를 취할 수 있다.
질량이 약 250기가전자볼트인 입자에 미치는 중력효과는 무시할 정도로 작기 때문에 입자물리학 계산을 할 때 일반적으로 중력을 무시한다. 그러나 고차원 중력은 강하고 무시할 수 없다. 플랑크 질량은 믿을 만한 양자장이론에서 가상입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질량이다. 가상입자를 포함하여 입자들의 질량이 플랑크 질량 이하라면 일반적인 양자장이론이 적용되고, 양자장이론 계산은 신뢰할 만한 것이 된다. 톱쿼크의 질량이 거의 플랑크 질량과 같다 해도 이 계산은 믿을 만한 것이 된다.
계층성문제는 질량이 무척 큰 가상입자가 힉스입자에 미치는 질량효과가 거의 플랑크 질량만큼 크다는 것, 즉 힉스입자의 질량이 우리가 원하는 값(바른 약력규모질량 및 기본입자의 질량을 만들어주는 값)보다 1억 배의 1억 배(1경 배)나 큰 값을 갖는다는 문제이다. 두 개의 힉스장이론을 대신하는 이론은 모두 낮은 약전자기 질량 규모를 포함하거나 예측해야 한다. 이 이론들 중 계층성문제를 다룰 때 미세조정 없이 힉스입자의 가벼움을 확실히 설명해주는 이론은 드물다. 힘의 통일이라는 개념은 매력적이더라도 실체가 없는 고에너지 물리학의 이론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계층성문제의 해결은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현상을 좀더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LHC에서 250-1,000기가전자볼트의 질량을 갖는 새 입자를 발견하지 못하면 계층성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