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도서출판 知와 사랑)
이 책은 27개의 장으로 이뤄졌으며, 각 장은 한 권의 철학 고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7권의 철학책이 한 권에 담긴 것입니다. 이 고전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줍니다. 이런 이유 외에도 27권은 자체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개인과 국가 indivisual and state
일반적으로 『국가』는 정치철학에 관한 저작으로 간주되며 대부분의 내용이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관한 논의는 오직 개인의 도덕을 더욱 명료하게 만드는 방편으로서만 소개되고 있다. 플라톤의 주요 관심은 ‘정의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란 조금은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그리스어인 ‘디카이오스네dikaiosune’의 가장 적합한 번역어이다. 이 말은 대략 옳은 일을 행함을 뜻한다. 플라톤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최선의 길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가 국가라는 조직을 고찰하는 이유도 사실은 국가가 ‘대문자로 쓰인 개인’(개인의 단순 확대물: 옮긴이)에 해당한다는 자신의 믿음 때문이다. 즉 국가에서의 정의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치 근시안이 커다란 글자를 더 쉽게 읽듯이, 규모가 작은 개인보다는 국가에서의 정의를 관찰하기가 더 쉽다는 말이다.
노동의 분업 division of labor
인간은 혼자 살기가 쉽지 않다. 협동과 공동생활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짓는 순간부터 각자의 기술에 따른 분업이 의미를 갖게 된다. 즉 도구 제작자는 일 년 내내 도구를 만들고 농부는 농사만을 짓는 것이, 낡아버린 도구 때문에 농부가 일을 멈추고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것보다 낫다. 도구 제작자는 도구 제작기술에 있어 농부보다는 훨씬 능숙할 것이다. 이것은 기술이 관련된 다른 업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술은 숙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노동이 더욱 전문화되면서, 외부 공격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직업군인의 필요성도 명백해진다.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의 수호자들은 마치 훌륭한 경비견처럼 강하고 용감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철학적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의 상당한 지면을 수호자들을 위한 훈련 일정에 할애하고 있다.
통치자, 보조자, 그리고 노동자들 rulers, auxiliaries and workers
플라톤은 수호자들을 두 계층으로 나눈다. 통치자들과 보조자들이 그것이다. 통치자들은 정치권력을 가질 수 있는 그리고 모든 중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보조자들은 통치자를 돕고 외부의 위협에 대한 방어막을 제공한다. 세 번째 계층인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노동을 통해 시민 모두를 위해 생필품을 제공한다. 플라톤은 노동자들의 삶에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국가』의 대부분은 수호자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통치자들은 사회에 최대의 이익이 되리라고 판단되는 일을 행하는 데에 자신의 삶을 바칠 만한 사람들로 선정된다. 부적합한 후보들을 제거하기 위해 플라톤이 제안하는 방법은 이렇다. 후보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통치자들은 다양한 시험을 거쳐야만 하는데, 이들이 자신만의 쾌락 추구에 유혹되는지 보기 위해서다. 유혹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면밀히 관찰될 것이며, 오로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완전한 헌신을 입증해 보이는 사람들만이 통치자로 선정될 것이다. 이들은 아주 적은 수가 될 것이다.
수호자들에게는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으며, 심지어 이들의 자녀들까지도 공동으로 관리될 것이다. 사실, 플라톤은 가족에 대한 급진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그는 가족을 폐기하고 그 자리를 국가 보육원으로 대체하길 원한다. 거기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양육된다. 이런 제도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증대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자라난 어린이들은 가족 구성원에 대한 충성 따위로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관계도 규제된다. 시민들은 오직 특별한 축제에만 섹스가 용납되는데, 그때 사람들은 제비뽑기로 짝을 정한다. 적어도 참가자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사실은 통치자들이 우량 체질들만이 후손을 출산할 수 있도록 제비뽑기의 결과를 최종 결정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국가는 강하고 용감한 어린이들을 생산하도록 기획된 자체의 우생학(종족 개량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바로 어머니로부터 격리되어 전담 관리자에 의해 양육된다. 열등한 수호자의 아이들 및 노동자의 ‘결함 있는’ 아이들은 폐기처분된다.
여성의 역할 role of women
『국가』에서 플라톤의 제안은 선택적 짝짓기와 영아살해의 계획들처럼 모두 불쾌한 것들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그의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 남성과 나란히 싸울 수 있게 해야 하며, 소질이 보이면 수호자도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도 여전히 남성이 모든 활동에서 여성보다 낫다고 믿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결혼한 중류층 여성들이 집에 갇혀서 사실상 감옥생활을 했던 시기에 그의 이러한 제안들은 급진적이었다.
금속의 신화 the myth of metals
국가의 성공은 조국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시민들의 충성에 달려 있다. 이런 충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플라톤은 모든 사회계층들이 자신들의 근원에 관한 신화를 믿도록 권장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때때로 ‘장대한 신화magnificent myth’ 또는 ‘고귀한 거짓말noble lie’로도 불리는 이 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땅에서 솟아났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과 교육에 대한 기억은 단지 꿈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모든 시민이 형제자매이다. 이들은 모두 어머니인 대지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화는 마땅히 시민들로 하여금 조국(그들의 어머니)과 서로서로(그들의 형제자매들)에게 충성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신화는 또 다른 측면을 가진다. 신은 개인을 창조했을 때 그들 각각에게 금속의 성분을 첨가했다. 신은 통치자들에게는 금을, 보조자들에게는 은을, 노동자들에게는 동과 철을 첨가했다. 신은 통치자들에게 어린아이에게서 보이는 금속 성분을 관찰하라고 가르쳤다. 만일 금 성분의 부모에게서 동 성분을 띤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 부모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 아이가 노동자의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한 노동자의 아이가 금 또는 은의 성분을 지녔다면, 그 아이는 그 성분에 맞게 통치자나 보조자로 키워져야 한다. 이 신화는 단지 충성심뿐만 아니라, 삶에서의 자기 직분에 대한 만족을 산출하도록 의도되었다. 당신이 속하게 될 계급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