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할 핑계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승리한 것에 고무된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군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국가 체코슬로바키아로 향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에 견줄 만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독일군 참모가 이 작은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전략을 2년 전부터 만들어놓았습니다.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할 핑계거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는 독일인이 350만 명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의 독일인처럼 자신들이 받는 박해에 대해 유례없이 극렬한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가 망명 비자를 기다리면서 82세의 생일을 눈앞에 두고 있던 5월 초, 히틀러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무솔리니의 찬성을 얻어내기 위해 군인 500명과 함께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

히틀러에게 이탈리아 방문은 모욕적이었습니다. 그와 수많은 측근들은 무솔리니가 아니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 3세(1869-1947)를 만났습니다. 게다가 히틀러는 자동차도 아닌 사륜마차로 이동했습니다. 오찬을 하면서 그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고 자신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여왕 앞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여왕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히틀러를 깎아내리려는 그녀의 또 다른 의도였습니다. 왕은 히틀러가 매일 마약 주사를 맞으며, 성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침대보를 덮게 하기 위해 잠자리마다 여자를 들인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총통이 여자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무솔리니는 히틀러가 생각하는 침략에 대해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히틀러는 끈기 있게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켰고, 결국 무솔리니의 집무실로 들어가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를 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솔리니는 히틀러에게 그 작은 나라는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그가 원하는 대로 진행해도 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이 대담한 행보를 보이면 동맹국들도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울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를 ‘벌레’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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