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파울 괴벨스는 빈에서 군중과 마주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이룬 성공은 독일인들 사이에서 히틀러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히틀러의 연설에는 신이 독일의 재탄생을 이끌 인물로 자신을 선택했다는 자화자찬이 가득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친 히틀러는 슈슈니크가 3월 13일로 정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통합에 대한 국민 투표를 진행시키고 침략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히틀러는 총통으로서 자신이 오스트리아에서 한 일이 전적으로 합법적이란 점과 오스트리아인이 자신을 운명의 인물로 환영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부여주고 싶었습니다.
투표 전날인 토요일, 히틀러와 파울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1897-1945)는 빈에서 군중과 마주했습니다. 1928년에 국화의원에 당선, 이듬해에 당 선전부장이 된 괴벨스는 새로운 선전수단을 구사하고 교묘한 선동정치로서 1930년대 당세 확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국민계발선전장관, 문화회의소 총재로서 문화를 완전히 통제했습니다. 최후까지 히틀러에 충성한 그는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 총리 관저의 대피호에서 처자와 함께 자살하게 됩니다.
그날 히틀러와 괴벨스가 군중과 마주한 장면을 나치 기관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발코니에 나타난 괴벨스 박사가 선언한다. ‘독일인이여, 난 위대한 독일제국의 날을 선포한다. 깃발을 올려라.’ 사이렌이 울린다. 깃대에서 깃발이 올라간다. 수만 명이 머리를 위로 올린 채 서 있다. 그들의 침묵은 기도이다. 기쁨의 함성을 외치라는 요구도 소용없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우리의 조물주에게 밀려드는 기쁨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그날 늦게, 자신을 맹목적으로 예수와 비교하던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제국이 이곳에 한 청년을 보낸 건 분명 신의 뜻이다. 청년을 지도자로 세워 자신을 모국을 독일제국에 되돌리는 건 명백한 신의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신의 섭리를 의심해야 한다.”
히틀러는 눈물을 글썽이며 군중에게 외쳤습니다.
“나는 가장 심각한 굴욕에 처해 있을 때에도 독일을 믿었다.”
이제 오스트리아가 히틀러를 믿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투표 결과 오스트리아 선거인의 99.73%가 통합에 찬성했습니다. 독일에서는 90.2%가 동의했고, 99.8%는 새로운 독일 의회를 위해 히틀러가 내세운 후보자들을 찬성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인 1만1,281명이 히틀러를 반대했는데, 그중 4,939명이 빈 시민들이었습니다. 히틀러가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