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프로이트의 집과 출판사를 샅샅이 뒤지던 날


 

 

 

 

예쁘지도 않고 매력적인 외모가 아닌 마르타와 프로이트가 결혼한 지 50년이 되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일에 신중한 마르타는 여섯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방해받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서재를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녀의 집은 늘 깨끗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연구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지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대화 상대는 그의 친구들이나 딸 안나, 때때로 그런 일에 호기심과 재능이 있는 처제 민나였습니다.

나치가 프로이트의 집과 출판사를 샅샅이 뒤지던 날, 빈의 모든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협박을 안 빈 주재 공사 존 윌리는 미국 국무장관 코델 헐Cordell Hull 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프로이트 박사가 노령과 질병의 고통도 모자라 위험에 처했습니다.” 헐은 이 메시지의 복사본을 프로이트와 함께 윌슨 책을 펴내기도 했고, 당시 파리에 살던 윌리엄 불리트에게 보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현재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간을 두고 프로이트가 보나파트라 공주에 의해 안전하게 파리로 이송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프랑스가 그에게 비자를 발급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 주재 미국 대사 휴 로버트 윌슨Hugh Robert Wilson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헐에게 지시했습니다. 헐이 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윌리가 어제 빈에서 프로아트 박사가 위험에 처했다는 전보를 보내왔습니다. 대통령은 대사께서 이 문제를 적당한 독일 관료들과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다뤄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또 적합한 권위자가 해결방안을 마련해서 프로이트 박사와 그의 가족이 빈을 떠날 수 있도록 조치해주기를 강력히 희망하셨습니다.

곧이어 코델 헐은 나치가 프로이트의 집에 침입해 돈을 훔치고 그의 여권을 몰수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권은 미국이 프로이트를 돕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아끼는 제자 어니스트 존스Ernst Jones는 합병 초기부터 프로이트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미국인 외교관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존스는 정신분석을 시작한 초기에 어린이 환자들에게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고발되어 출생지인 영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존스는 환자들이 그들의 환상을 자신에게 투사하는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옮겨가 정신분석학을 강의하고, 1911년에는 미국 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2년 뒤 존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정신분석 개업의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존스는 프로이트를 공격에서 보호하고 스승의 생각을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반영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치가 출판사와 프로이트의 집에 침입한 뒤 존스는 스승에게 빈을 떠날 것을 제안했지만, 프로이트는 그곳에 머무를 확고한 결심을 내비쳤습니다. 프로이트는 존스에게 자신은 여행은커녕 기차 객실까지도 갈 수 없을 것이고, 자신을 받아주고 싶어 하는 나라도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존스는 타이타닉호의 2등 항해사 라이톨러Lightoller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배의 보일러가 터지면서 바다 표면으로 떠 밀려갔으나 난파선을 타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심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언제 배에서 내렸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전 한 번도 배에서 내린 적이 없습니다. 배가 저를 떠났지요.

이후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3월 22일 화요일에 일어난 일은 프로이트의 생애에 최악의 것으로, 그의 행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로이트가 안나를 거의 잃을 뻔한 악몽 같던 날, 그의 곁에는 또 다른 동맹군이 있었는데, 그가 ‘우리의 공주님’이라고 부르던 마리 보나파르트였습니다. 공주는 나폴레옹의 형제 루시앙Lucien의 증손녀입니다. 그녀는 그리스의 왕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1세의 형제이자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Christian 10세의 종형제인 조지George 왕자와 결혼했습니다. 공주는 어마어마한 부자이고 유럽에 있는 모든 사람, 아니 적어도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은 모두 알았습니다. 프로이트는 하루에 두 시간씩 두 달 넘게 공주의 정신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공주의 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불감증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주 또한 정신분석자가 되어 다수의 에세이와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중엔 프로이트와 끊임없이 서신 왕래를 하면서 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49)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공주는 프로이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에게 반했습니다. 그녀는 프로이트를 두고 아인슈타인과 프랑스의 화학자, 미생물학자로 화학조성, 결정구조, 광학활성의 관계를 연구하여 입체화학의 기초를 구축한 파스퇴르Louis Pasteur(1822-95)를 합쳐놓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로이트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런 말로 치켜세우니 기분이 좋군. 하지만 당신 말에 동의할 수 없어. 내가 겸손해서 그런 건 절대 아냐. 난 내가 발견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아니라네. 훌륭한 발견자는 반드시 훌륭한 의식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큼 세상을 바꾼 사람이 있나? 그렇지만 그는 모험가일 뿐이야.

프로이트도 공주에 빠졌는데, 그는 그녀가 양성애자이고, 세상을 여자의 눈만이 아닌 남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세기 유럽의 지성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여성과 그녀를 비교하면서 말했습니다.

루 안드레아스-살로메는 단지 거울에 불과하지. 그녀에게는 당신과 같은 남자다움도, 진실함도, 멋도 없어.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얌전한 척하지 않아. 어느 누구도 나만큼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는 프티부르주아petit bourgeois(소시민)일 뿐이지. ... 난 내 아들이 이혼하거나 딸이 불륜을 저지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합병이 있고 며칠 뒤 공주는 빈으로 와서 그리스 공사관에 거처를 구한 다음 프로이트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1938년, 나치가 국제적 힘을 얻기 위해 움직일 때 공주 같은 인물이 얼마든지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 공주는 나치에게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공주가 베르크가세 19번지에 도착한 3월 17일, 휴 로버트 윌슨은 외무부에서 독일 국무장관 에른스트 폰 바이츠제커Ernst von Weizsäcker(1882-1951)를 만나 프로이트에 대한 자신의 걱정을 전했습니다. 바이츠제커는 대사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빈에서 프로이트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수수께끼 같은 인물 안톤 사우어발트Anton Sauerwald 박사였습니다. 합병 후 나치는 빈에 있는 모든 유대인 사업을 관리하는 소위 ‘위원’을 임명했는데, 사우어발트가 프로이트와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를 담당했습니다. 출판사의 자산을 정리해 나치 정부에 가져다주는 임무를 맡았을 때 사우어발트의 나이 35세였습니다. 그는 빈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 법학을 전공했고, 1929년에 졸업했습니다. 이후 그는 화학연구소를 열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사우어발트를 고용해 빈과 그 주변에 매설된 폭탄을 연구, 보고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폭탄은 대부분 당시 불법 단체였던 나치가 묻었으며, 때로는 하루에 40개나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사우어발트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는데, 그가 폭발물의 종류와 개수에 대한 보고서를 신속하게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정확한 보고로 빈 경찰과 함께 화려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나치를 위한 폭발물을 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낮에 폭탄을 제작하고 다음날 아침에 보고했습니다.

처음 출판사를 둘러보던 사우어발트는 나치에 헌신적인 일원인양 행세했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비열한 유대인과 어울리느냐면서 출판사 직원들을 모욕했습니다. 한참 거들먹거리면서 욕설을 퍼붓고 나니 따분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의 책과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엄청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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