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연구실과 환자들을 위한 진료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독일제국이 합병했다고 시민들에게 선언하던 날, 나치 패거리가 프로이트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 들이닥쳤습니다. 출판사는 베르크가세 7번지에 소재했습니다. 나치가 도착했을 때 프로이트의 아들인 변호사 마르틴 프로이트는 기록들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출판사에 쌓여있던 문서는 수많은 유대인들처럼 외국 계좌에 돈을 예치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불법이었습니다. 나치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돈을 몰수하고 프로이트와 그의 가족을 감옥으로 보낼 것이 분명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베르크가세 19번지 뒤편에 위치한 자신만의 공간에 애완견 륀과 은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력을 충전하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소파 위편 두껍고 풍성하게 짠 오리엔탈 융단에 베개 여섯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머리를 기댄 채 누워있었습니다. 그의 머리 위로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 람세스Ramses 2세의 애스원 남쪽 약 280km에 소재하는 나일 강 서안에 있는 촌락에 위치한 아부심벨Abu Simbel 신전을 화려한 색채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소파의 머리 쪽에는 로마 시민의 흉상이 있었고, 흉상 위로는 켄타우루스와 목신 판을 폼페이 양식으로 그린 벽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스토브 가까이에 많은 그림들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스핑크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오이디푸스를 그린 앵그르의 유명한 그림의 복제품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50번째 생일에 제자들이 선물한 초상화입니다.

프로이트가 누운 소파에서 오른편으로 몸을 돌리면 책장 위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의 유물과 작은 조각상, 흉상이 가득했습니다. 프로이트는 2천 년이 넘은 골동품들을 집안 곳곳에 두었습니다. 책장에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커다란 낙타상과 그리스의 고전적인 테라코타, 극동에서 가져온 수많은 불상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책장 왼편에는 프로이트가 반한 이집트 전투의 여신 네이트Neith의 상이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방은 신비로운 장소, 과거가 출몰하고 천계의 약속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프로이트가 누운 환자들을 위한 진료실 옆 연구실은 그가 저서와 에세이를 집필하고 방문객과 환담을 나누며 때때로 밤을 지새운 곳입니다. 고대 유물들이 빽빽한 방에는 2,500권이나 되는 책이 있는 서재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엔 그가 유창하기 읽고 말할 수 있는 영어로 된 두꺼운 책들과 독일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된 책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종교, 인류학, 역사와 같은 주제를 다룬 것들입니다. 서재에는 그가 좋아한 괴테, 실러, 셰익스피어, 밀턴, 마크 트웨인 등의 문학작품도 많았습니다. 그는 고고학에 관한 서적을 수집했는데, 그는 심리학보다 고고학 연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을 거란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빽빽한 책장 위로 자신의 인생에 함께 했던 여인들의 사진을 올려놓았습니다. 프로이트와 마르타는 막내딸 안나가 태어난 후 성관계를 갖지 않았으며, 프로이트는 에로스에 깊이 빠져든 금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지성계애서 가장 악명 높았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Salome(1861-1937)의 사진도 올려놓았습니다. 시인 릴케와 철학자 니체 모두 루에게 구애했는데, 여성에 관심이 없던 니체가 그녀에게 너무 깊이 빠져서 청혼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그런 루가 프로이트의 제자가 되었고, 정신분석학자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마리 보나파르트Marie Bonaparte(1882-1962)의 사진도 두 장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종종 ‘우리의 공주님’이라고 부른 그녀는 나폴레옹의 후손으로 루처럼 정신분석학자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의 가장 유명한 질문은 바로 그녀에게 한 것입니다.

위대한 질문은 절대 답을 구하지 못한다. 내가 30년 동안 여성의 감정을 연구했는데도 여전히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프로이트의 여성 삼위일체 마지막 인물은 프랑스의 가수이자 배우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1865-1944)였습니다. 그녀는 툴루즈-로트레크Toulouse-Lautrec(1864-1901)가 그린 초상화로도 유명한 여인입니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프로이트도 이베트가 빈에서 콘서트를 할 때에는 꼭 참석했습니다.

프로이트는 금욕주의자였으며, 술이든 종교든 로맨틱한 사랑이든 중독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이집트인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네이트 상들이 그를 장악했습니다. 이집트 문화보다 신비로운 문화는 찾기 힘들다는 사실, 그들의 비밀보다 깨기 힘든 건 없다는 사실이 프로이트의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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