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의 <브루투스 아들들의 시신을 운반하는 릭토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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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아들들의 시신을 운반하는 릭토르들>88은 1787년의 살롱에 소개하도록 왕이 주문한 것인데 제때 완성하지 못한 데다 이듬해 피에르64가 살롱 출품을 방해하여 1789년에야 소개되었다. 작품의 긴 원제는 <브루투스, 제1집정관, 로마의 자유에 대항해 타르퀴니우스의 음모에 가담한 두 아들을 죽게 하고 귀가하다;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아들들의 시신을 가져온 릭토르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는 그보다 500년 후 율리우스 시저를 살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Marcus Brutus와는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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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로마의 마지막 전제군주)에 맞서 로마를 구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사건은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가 브루투스의 동료 콜라티누스의 정숙한 아내 루크레티아를 강간하는 데서 시작된다. 루크레티아가 남편과 브루투스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자 브루투스는 그녀의 몸에 꽂힌 칼을 뽑아낸 후 그녀의 피에 대한 복수와 더불어서 부패한 독재자를 몰아내겠다고 맹세했다. 결국 타르퀴니우스은 추방되고 브루투스와 콜라티누스는 기원전 508년에 세워진 첫 로마공화국의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브루투스의 두 아들 티투스와 티베리우스는 타르퀴니우스의 복귀에 가담했다가 아버지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다비드는 브루투스가 비정한 아비로 아들의 처형에 참석한 모습을 드로잉하며 습작했다.90 그러나 그는 공식석상에서의 브루투스의 모습보다는 자신의 가정에서의 아비의 모습을 그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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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애국주의를 나타낸 이 작품 역시 <호라티우스의 맹세>8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국가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국가를 선택하는 남자와 이에 처절하게 반응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호라티우스의 맹세>보다 이 작품이 더욱 더 극적으로 묘사되었다.
다비드는 브루투스가 관람자를 바라보도록 정면으로 구성함으로써 그가 과연 두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조국에 충성을 다 한 위대한 인물인지 아니면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 괴물과도 같은 존재인지를 관람자 스스로 판단하게 했다. 플루타르크는 브루투스의 행위가 가장 칭찬받을 만하거나 아니면 가장 비난받을 만하다면서 그는 신과 같은 존재인 동시에 야수와도 같은 존재라고 했다. 이 작품은 1789년 8월 말에 완성되었고 살롱에 소개된 후 문제의 작품이 되었으며 이듬해 11월 19일 볼테르의 작품 <브루투스>가 공연되자 사람들의 전폭적인 갈채를 받았는데 배우들은 다비드 작품에서의 구성을 따라 그룹을 지어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