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이론Multiverse Theory
존 휠러의 제자이며 이론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Hugh Everett III(1930~82)는 죽은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가 서로 다른 우주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가설을 도입하여 선택과 관련된 문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했다. 에버렛은 다중우주이론을 주제로 하여 1957년에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했으나 당시만 해도 그런 황당한 이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양자역학의 역설을 해결해줄 가장 강력한 후보로 인정받고 있다. 다중우주란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우주들을 말한다. 평행우주와 같은 의미이다.
에버렛의 다중우주해석에 따르면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에 우주는 두 갈래로 갈라져서 진행된다. 이것들 중 하나의 우주에서 고양이는 살아 있고 다른 우주의 고양이는 죽은 채로 존재한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임의의 관측이 행해질 때마다 양자적 분기점이 형성되면서 우주는 끊임없이 갈라진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그 사건이 발생하는 우주가 반드시 존재하며, 이 모든 우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만큼 현실적이다. 각 우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우주가 유일한 현실이라고 믿으면서 다른 우주를 상상이나 허구의 세계로 간주한다. 그러나 모든 평행우주들parallel universes은 결코 환영이 아니며, 거기 속해 있는 모든 물체는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는 물체들처럼 구체적이고 확고한 실체로 존재한다.
다중우주해석의 장점은 양자역학의 세 번째 가정, 즉 파동함수wave function(양자역학에서 물자입자인 전자・양성자・중성자 등의 상태를 나타내는 양을 말하는 기초방정식이다. 근본이 되는 슈뢰딩거의 방정식Schrodinger equation은 파동함수의 시간적, 공간적 변화를 기술하는 것으로 뉴턴역학Newtonian mechanics에서의 운동방정식equation of motion과 비슷한 구실을 양자역학에서 하고 있지만, 그 수학적 해인 파동함수에서 유도되는 지식은 확률적 성격을 지니며 뉴턴의 운동방정식의 결정론적 성격과는 이질적 특징을 나타낸다)의 붕괴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중우주에서 파동함수는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파동함수로 분리되면서 영원히 계속된다. 파동함수는 마치 거대한 나무처럼 관측이 행해지는 순간마다 가지를 쳐나가고, 각 가지의 끝에는 하나의 완전한 우주가 대응된다. 이것은 파동함수의 붕괴를 주장하는 코펜하겐학파의 해석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확하다. 수백, 수천만 갈래로 갈라지는 우주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관측과 파동함수의 붕괴라는 골치 아픈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은 다른 우주에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곳에 있는 우리와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우주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양자역학의 해석은 공상과학소설처럼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황당한 구석이 있다. 평행우주는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함유하는 에너지의 양이 각기 다르다. 각각의 우주는 무수히 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에너지의 차이도 매우 클 것이다. 그런데 파동의 에너지는 파동의 진동수에 비례하므로(플랑크의 법칙Planck's law), 각 우주를 나타내는 파동은 진동수가 서로 달라서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도 없다.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이 희한한 우주관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코펜하겐학파가 얻은 결과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것은 파동함수의 붕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룬 쾌거였다. 코펜하겐학파의 실험결과와 다중우주를 가정하고 행해진 실험결과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다중우주이론이 현실세계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보어가 제안했던 파동함수의 붕괴는 주변 환경에 의한 교란과 수학적으로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