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렌페스트는 1933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자살했다


 

 

 

 

그날 저녁 에렌페스트를 만난 보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다음날 밤을 꼬박 세운 보어는 드디어 아인슈타인의 논리에서 작은 오류를 발견했다. 질량과 에너지는 등가이므로 광자를 방출한 상자는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무게를 갖고 있으므로 에너지를 방출한 상자는 중력장 아래서 아주 조금 위로 솟아오를 것이다(상자는 용수철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광자에 대한 불확정성원리를 재확인하는 사례에 불과하다. 상자무게의 불확정성과 셔터 속도의 불확정성을 계산해보면 이 상자가 불확정성원리를 만족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사용한 것이다. 이로써 보어는 세기적 논쟁의 승리자가 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신은 이 세계의 운명을 주사위로 결정하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 with the world”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 말을 전해들은 보어는 “제발 신 타령 좀 그만해라. 우리는 신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다”라고 반박했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말했다. “양자역학이 확고한 진리의 한 조각을 포함하는 이론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내재되어 있는 미묘한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물리학자들을 끝까지 경멸했다. 그는 말했다. “요즘 물리학자들 사이에는 파격적인 생각을 펼치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퍼져있다. 그들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거기에는 ‘진리를 근사적으로 서술하는 이론’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뉴턴의 고전역학을 붕괴시키지 않고 일반화시킨 것처럼 그는 양자역학을 포함하면서 더욱 일반적이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통일장이론을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그리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각각 한편이 되어 물리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논쟁은 지금까지도 세간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사고실험은 그동안 실험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실험실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어 60개의 탄소원자로 이루어진 버키볼Buckyball(플러린fullerene을 구성하는 공 모양의 분자. 나노Nano 기술의 선구자로 미국 라이스 대학의 리처드 스몰리Richard E. Smalley(1943~2008) 교수는 탄소 형태의 버키볼을 발견한 공로로 1996년 노벨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을 이용하여 놀라운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보어가 말했던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나누는 벽’의 개념은 완전히 폐기되었다. 실험물리학자들은 수천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바이러스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려면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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