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엥은 화가이며 제도가였고 잉그레이빙에 뛰어났다

다비드에게 처음 드로잉을 가르쳐준 사람은 부셰였다. 프랑스 로코코 회화를 대표하는 부셰는 다비드 외삼촌의 친구였다. 외삼촌은 다비드를 데리고 부셰에게 갔는데 부셰는 너무 연로한 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열일곱 살의 다비드를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신 제자였던 쉰 살의 아카데미 교수 조제프 마리 비엥으로 하여금 가르치게 했는데 비엥은 당시 유럽에서 명성이 자자한 화가였다. 진보주의 사고를 가진 비엥은 로코코 양식의 장식적인 작품을 지향하지 않고 그리스 미술에 매료되어 고전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비엥은 화가이며 제도가였고 잉그레이빙에 뛰어났다. 바로크 양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화단에 신고전주의 양식을 처음 소개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제자들은 출중했는데 다비드 외에도 장-프랑수아-피에르 페이롱, 조제프-베누아 수베, 장-밥티스트 르뇨가 그로부터 수학했다. 비엥의 22살 연하의 아내도 화가였고 아들도 훗날 화가가 되어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비엥이 18세기 프랑스 회화에 기여한 점을 꼽으라면 첫째,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푸생의 전통을 따라 고전미를 추구한 점이다. 이는 그가 신고전주의의 이상을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비엥은 제자들에게 실제 모델을 그리게 함으로써 회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1740년대 프랑스 회화는 매우 인위적이었는데 비엥에 의해서 생동감 있는 회화로 탈바꿈된 것이다. 다비드가 비엥의 가르침을 받게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비엥을 소개한 부셰는 다비드에게 은밀히 말했다.
비엥은 훌륭한 화가지만 그의 작품에는 약간 냉기가 있으니 이따금 날 찾아와 네 작품을 보여준다면 비엥의 냉기 대신 나의 포근함이 감돌도록 바로잡아주마.

<에로스를 파는 사람>20
1765년경 다비드가 몽마르트 가에 있는 비엥의 아틀리에에 입학했을 때 아틀리에에는 5, 6십 명의 학생이 수학하고 있었다. 비엥은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리며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을 습작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그 자신은 학생들에게 말한 가르침을 몸소 실행하지 않았다. 1763년에 그린 <에로스를 파는 사람>20을 보면 당시 헤르쿨라네움 근처 그라나노Gragnano에서 발굴된 고대 프레스코에서 이와 유사한 작품이 발견되어 비엥이 고대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평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작품을 칭찬했고 디드로가 특히 회화적 단순함을 지적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장르마다 미학적 등급이 매겨져 있었는데 역사, 성서, 신화에서 주제를 구하는 역사화가 초상화나 풍경화보다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다.
다비드는 보통 화가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주변의 친척들을 모델로 습작하며 기교를 익혔는데 1769년 자신을 후원한 외삼촌과 외숙모 마리 조제프22 그리고 외사촌 마리 프랑수아즈23의 초상을 각각 그렸다. 스물한 살 때 그린 그의 작품에서 외숙모의 팔이 몸에 비해 조금 긴 것을 제외하고는 모델과 일체가 되어 모델의 심상을 얼굴 표정으로 묘사하려고 했고 화려한 색을 사용했음을 보는데 이런 점에서 훗날 그가 초상화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는 고의로 테이블 위의 책들이 정렬되지 않게 함으로써 회화적 진실을 보여주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