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기 드 모파상을 만나다


모네의 <봄 Spring>, 1886, 유화, 65-81cm.

모네의 <에트레타 Etretat>, 1883, 유화

모네의 <지베르니 근처의 양귀비밭 Champ de Coquelicots, Environs de Giverny>, 1885, 유화, 65-81cm.

모네의 <지베르니로 가는 길, 겨울 The Road to Giverny>, 1885, 유화
1883-86년 모네는 르아브르 북쪽 에트레타로 정기적으로 가서 그곳의 절경을 그리면서 <봄>을 비롯한 지베르니의 풍경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사진: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1850-93)
에트레타는 모네만 즐겨 찾은 곳이 아니라 단편소설 작가 기 드 모파상도 자주 방문했습니다. 모파상도 모네와 마찬가지로 노르망디 사람으로 디에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열두 살 때 부모가 별거하자 어머니 밑에서 문학적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1869년부터 파리에서 법률공부를 시작했지만, 1870년에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지원 입대했습니다. 전후에 심한 염전사상(厭戰思想)에 사로잡혔고 이것이 문학지망의 결의를 굳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1872년 아버지의 도움으로 해군성 ·문부성에 취직,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머니의 어릴 때부터의 친구인 G.플로베르에게서 직접 문학 지도를 받았습니다. 1874년 플로베르의 소개로 에밀 졸라를 알게 되었고, 또 파리 교외에 있는 졸라의 저택에 자주 모여 문학을 논하던 당시의 젊은 문학가들과도 교류했습니다. 1880년 졸라는 모파상을 포함한 여섯 명의 젊은 작가들이 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취재한 단편집 『메당 야화 Les Soirées de Médan』를 간행했는데, 모파상은 여기에 『비곗덩어리 Boule de suif』를 실었습니다.
모파상은 27살 때부터 자신의 신경질환을 자각했으나, 이런 증세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과 10년 동안의 문단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몇 편 외에 『벨아미 Bel-Ami』(1885) 『몽토리올 Mont-Oriol』(1887) 『피에르와 장 Pierre et Jean』(1888) 『죽음처럼 강하다 Fort comme la mort』(1889) 『우리들의 마음 Notre cœur』(1890) 등의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상당수가 에트레타 강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 어두운 염세주의적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그의 무감동적인 문체를 통해 작품 전체에 이상한 고독감을 감돌게 합니다. 이런 경향은 당시의 시대적인 영향도 있으나, 그보다도 그의 신경질환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작으로 인한 피로와 복잡한 여자관계로 병이 더욱 악화되어 1892년 1월 2일 니스에서 자살을 기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으나, 이듬해 7월 6일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네가 모파상을 만난 건 1885년 후반이었고,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모파상은 1866년 9월 28일 잡지 『질 브라 Gil-Blas』에 '풍경화가의 인생 The Life of Landscapist‘이란 제목으로 모네에 관한 글을 기고했습니다. 모파상은 모네가 대여섯 개의 캔버스를 들고 다니면서 동일한 주제를 다른 날 다른 시각에 그린다고 적었습니다.

모네의 <린스베르그 풍차와 튤립 들판 Tulip Fields with Rujnsberg Windmill>, 1886, 유화
1886년 봄 모네는 네덜란드로 가서 며칠 지내면서 스케치한 레이덴과 하를렘 사이에 펼쳐진 튤립 벌판 다섯 점을 지베르니로 가져와 완성했습니다. 네덜란드의 광활한 벌판과 바람에 나부끼는 튤립의 파문을 묘사했습니다. 그해 6월 15일 조르주 프티의 화랑에서 열린 제5회 국제 회화, 조각전에 튤립 회화 두 점을 소개했습니다. 유이스망은 6월 28일 르동에게 보낸 편지에 “모네가 그린 네덜란드의 튤립 벌판은 압도적입니다. 참으로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모네는 베르테에게 출품한 작품들이 모두 훌륭한 분들에게 고가에 팔렸음을 알리며 만족해했습니다.
그해 뉴욕에서 개최된 ‘파리 인상주의 유화와 파스텔전’에 모네의 작품 40점이 소개되었습니다. 뒤랑-뤼엘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기획한 이 전시는 미국인 화가 메리 카삿과 존 싱어 사전트의 도움으로 성공적이었습니다. 뒤랑-뤼엘이 뉴욕에서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어 성공한 그때부터 미국인들은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으며,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평론가들은 미국인들의 열광적인 구매 대문에 유럽에는 작품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