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지베르니에 정착하다
지베르니는 파리 서북쪽으로 80km 떨어진 에프트 강과 센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센 강둑의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지베르니에서 5km 가면 이웃 마을 베르농이 있고, 거기에 기차역이 있어 파리로 갈 수 있습니다.
푸아시의 집은 1883년 겨울에 계약이 만료되므로 모네는 절경을 찾아다니다가 지베르니에 이르렀고, 4월에 그곳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고 이 마을에 뿌리를 내려 화려한 전성시대를 구가할 <수련>의 무대를 준비하게 됩니다. 열 식구가 살 농가를 세 얻어 이주할 때에도 이사비용을 대며 투자를 아끼지 않은 뒤랑-뤼엘에게 모네는 희망에 찬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모든 일로 전 선생에게 더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대작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시골이 제 맘에 꼭 들기 때문입니다.”
센 강가에 조그만 창고를 지어 이젤이 부착된 보트와 캔버스를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센 강과 강 중앙에 있는 작은 섬들 그리고 강 건너 수평선이 보이는 풍경을 주로 그렸으며, 보트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가거나 베르농까지 내려가서 그리곤 했습니다. 르누아르가 새로운 주제를 찾아 그곳으로 모네를 자주 방문했습니다.
12월 중순에 르누아르와 함께 처음으로 지중해 해안으로 향했는데, 그곳을 다녀온 르누아르가 함께 가자고 권했기 때문입니다. 르누아르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베니스에서 성 마르코 성당과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성 마르코 성당, 베니스 St. Mark's, Venice>, 1881, 유화, 65.6-81.5cm.

르누아르의 <레스타크의 바위산 Rocky Crags at l'Estaque>, 1882, 유화, 66.5-81.9cm.

르누아르의 <세잔의 초상 Portrait of Cezanne>, 1880, 종이에 파스텔, 53-44cm.
두 사람은 두 주일 예정으로 마르새유에서 출발하여 몬테카를로를 경유해 제노아로 가기로 하고 도중에 엑상프로방스의 레스타크에 들러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폴 세잔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세잔은 번번이 살롱에 낙선하자 레스타크로 내려와 인상주의 이후의 회화를 조용히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린 레스타크 충경화는 훗날 조르주 브라크에 의해 발견되어 입체주의의 기원이 되는 회화로 인정받게 됩니다. 세잔은 카미유 피사로에게서 수학했고, 인상주의전에 참여한 적이 있어 두 사람과는 사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세잔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레스타크에서 그곳 풍경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걸음을 재촉하여 이탈리아 내륙으로 들어가 제노아로 갔습니다.
르누아르와의 여행에서 돌아온 모네는 1884년 1월에 혼자 이탈리아 국경 근처 보르디게라 바로 위에 있는 리비에라로 가서 석 달을 머물렀습니다. 그는 보르디게라에서 프란체스코 모레노를 알게 되었는데, 모레노는 커다란 별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모네는 모레노의 별장에 기거하면서 야자수가 우거지고 레몬과 올리브나무, 포도넝쿨이 있고 알 수 없는 꽃들이 만개한 그곳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뒤랑-뤼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태까지 본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자신의 여행을 르누아르가 모르기를 바랐습니다.
“보르디게라는 우리가 여행하면서 본 곳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새로운 풍경을 주제로 한 연작을 다시 그리고 싶습니다만, 이 여행에 관해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 혼자서 진행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저는 저만의 느낌에 몰입하여 고독하게 작업할 때에 일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1884. 1. 12)
지중해의 온화한 기후와 종려나무를 비롯하여 열대식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보르디게라를 모네는 지상의 낙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 그곳에 대한 감탄이 적여 있습니다.
“오렌지며 레몬나무, 야자수, 멋들어진 올리브나무 아래로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오. ... 푸른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오렌지와 레몬나무를 그리려고 하오. ... 바다와 창공의 푸르름을 설명할 방법이 없구려.”(1884. 1. 26)
모네는 보르디게라 외에도 벤티미글리아와 멘톤 그리고 그 밖의 곳으로도 가서 그곳의 햇빛과 대기를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기 위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색조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뒤랑-뤼엘에게 적었습니다.
“푸른색이나 핑크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풍경 자체가 정확하게 이런 화사함과 신비스러운 햇살로 이뤄져 있으므로 그대로 그리려고 합니다. 모든 풍경이 비둘기가슴색이나 선명한 펀치색입니다.”(1884. 3. 11)

모네의 <보르디게라 Bordighera>, 1884, 유화, 73-92cm.

모네의 <사소의 계곡, 보르디게라 La Vallee de Sasso, Bordighera>, 1884, 유화, 65-92cm.

모네의 <보르디게라, 이탈리아 Bordighera Italy>, 1884, 유화

모네의 <올리브나무 습작, 보르디게라 Study of Olive Trees, Bordighera>, 1884, 유화

모네의 <보르디게라 Bordighera>, 1884, 유화
1883년 12월 르누아르와 함께 지중해를 여행한 후 모네는 지중해가 마음에 들어 이듬해 1월 혼자 석 달 동안 여행하기로 하고 보르디게라에 들렸습니다. 이 겨울 여행은 지난 해 초 노르망디에서 고생하며 그린 것과는 달리 종려잎이 무성하고, 소나무의 푸름이 그치지 않는 대지와 풀 그리고 바다와 하늘 사이의 하얗게 빛나는 광채와도 같은 마을을 그리는 데서 그는 흥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네는 그곳에서 <보르디게라>를 비롯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