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살인과 인류 멸종의 도덕적 차이
목숨을 앗아갈 뿐 아니라 괴로움과 고통을 수반하고 미래를 말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전쟁은 끔찍한 잘못입니다. 핵전쟁이 여타의 전쟁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그것은 단순히 고통과 인명 살상의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종말에 이를 가능성까지 내포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파괴 도구와 달리 핵전쟁은 멸종의 가능성을 전하며, 바로 여기서 도덕적 차이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자유주의자 조지 캐테브George Kateb는 어떤 정책이든 철학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 고찰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캐테브에 다르면 핵 위험의 도덕적 요점은 핵전쟁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치명적인 사건에 대한 불평치고는 너무 하찮아 보이지만 캐테브는 그럼에도 개인주의가 핵 시대에 대한 가장 타당성 있는 관념론이며, “핵문제를 올바르게 보고 그것에 항의하며 저항하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도덕철학”이라고 주장합니다.
캐테브는 합법적인 정치체제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개인 권리의 보호에 있으며, 핵전쟁이 이러한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핵무기의 비사용만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정치체제는 통치권을 보유할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국민이나 다른 나라에 의한 전복은, 필요하다면 폭력에 의한 전복까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샌델은 캐테브의 개인주의적 견지에서 멸종이 죽음보다 더 끔찍한 운명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멸종이라는 특별한 손실에 대해 설명하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면서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캐테브가 옹호하는 개인주의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샌델은 첫 번째 방식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공동 세계에 호소하는 것으로 독일 태생의 유대인 여성 철학자이며 프린스턴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75)의 말을 인용합니다.
“공동 세계는 우리가 태어나 참여하여 죽으며 떠나는 곳이다. 이곳은 현재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전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 이후에 올 사람들과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이 존재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공동 세계의 영속성이 필수적입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은 오로지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의 불멸을 열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그러한 행동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합니다. 의미는 기억에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동 세계는 기억의 운반선이기 때문에 인간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공동 세계의 생존에 좌우됩니다.
멸종에 대한 두 번째 논거로 샌델은 민족과 국가, 문화, 공동체에 의해 규정되는 특정한 공동사회에 호소하는 것을 꼽습니다. 그 구성원들이 가지는 기억이 그 지방 특유의 전통에 대한 반향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상기하는 사건들이 그 구성원들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민족을 말살하는 건 언어와 문화, 특유의 존재 방식을 절멸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단 학살은 규모가 작을지라도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궁극적인 멸종의 위험을 암시합니다. 이는 각기 다른 고유의 표현방식 중 한 가지를 삭제함으로써 우리의 인간성을 훼손시키는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