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거짓말과 기만의 차이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윤리적 기반을 잃은 정치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므로 공직자와 정치인의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의 기만과 관련하여 샌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의 전쟁 준비를 기만한 행위를 예로 듭니다. 루스벨트가 그랬던 것처럼 존슨은 1964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베트남전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숨겼습니다. 루스벨트는 1940년 대선 기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도 말했고 앞으로도 거듭 밝힐 것이지만 여러분의 아들들이 해외의 그 어떤 전쟁터로도 보내질 일은 없을 겁니다.”
루스벨트와 존슨 모두 대중을 속였는데, 루스벨트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존슨은 부당한 목적을 위해 속였다고 샌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행한 기만의 도덕적 지위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존슨의 거짓말이 루스벨트보다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가치 없는 목적을 위해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에 대한 거짓말은 공무 수행이 아닌 사적인 잘못과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앞의 두 경우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샌델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상스러운 비난을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공적 책임과 아무 관련이 없다면, 사생활과 예의를 내세우며 부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거짓말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그 거짓말이 그렇게 해서 감추려고 하는 죄를 더 무겁게 만드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대교 규율과 유대교 도덕 등에 대한 랍비의 이야기를 담은 책 『탈무드 Talmud』에서는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 가지 예외를 인정하는데, 지식, 환대, 성sex과 관련된 거짓말입니다. 예를 들면 『탈무드』의 특정 구절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은 학자는 지식 과시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느 집의 손님 점대가 어떠했는지 질문을 받은 경우 “큰 환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의 성생활과 같은 내밀한 사안에 대해 질문을 받은 경우 거짓말 할 자격이 있습니다. 샌델은 이 마지막 조항이 클린턴의 경우에 단지 느슨하게 작용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샌델은 기만의 문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한층 복잡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는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외에도 자신을 비난하는 주장이 나오면 늘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는 부인했음을 지적합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거운동을 벌일 때 향락성 약물을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클린턴은 “미연방이나 주의 마약류 금지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훗날 영국 유학 시절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시인했습니다. ‘60분’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1992년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가 제니퍼 플라워스Gennifer Flowers와의 혼외정사를 부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클린턴과 12년 동안 관계를 맺었다는 플라워스의 타블로이드판 폭로에 대해 클린턴은 “그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성희롱으로 제소당한 폴라 존스Paula Jones 사건에 대한 비공개 증언에서 플라워스와의 성관계를 시인했기 때문입니다.
교묘한 얼버무림과 노골적인 거짓말 사이의 도덕적 차이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윤리학자들은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교묘한 얼버무림을 통한 진실 오도가 명백한 거짓말과 같은 목적을 가지며, 성공하는 경우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주의자 중 하나인 칸트는 거짓말과 진실한 발뺌, 즉 속임수나 기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칸트는 살인자가 찾아와 집에 숨어있는 사람을 찾을 때에도 거짓말을 하는 건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도덕주의자입니다. 그에겐 진실을 말해야 할 위무는 결과에 관계없이 필요합니다. 동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뱅자맹 콩스탕Benjamin Constant이 칸트의 강경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콩스탕은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는 진실을 알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살인자에게는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칸트는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잘못이 아니라 올바름의 근본 원칙을 침해하며, 나아가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의 인간적 존엄성까지도 손상시키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칸트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언명에 있어 진실은 그 어떤 편의주의도 허용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신성한 이성적 원칙이다.”
거짓말에 대한 절대적인 금지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허위가 아닌 진술’과 ‘거짓말’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었습니다. 콩스탕과 공방을 주고받기 수년 전 그는 자신의 종교철학 저서로 인해 프로이센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와 검열당국은 칸트에게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그 어떤 강연이나 저술도 삼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강연과 저술을 계속할 마음이 있던 칸트는 신중하게 약속했습니다.
“국왕 전하의 충직한 신하로서 저는 앞으로 종교와 관련된 모든 공개강연과 저술활동을 완전히 중지할 것입니다.”
몇 년 후 프리드리히 2세가 죽자 칸트는 자신의 약속을 철회했습니다. 그 약속은 현 국왕의 충직한 신하로서만 그를 구속한 것이었기 대문입니다. 칸트는 훗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그대 정말 신중하게 말을 골라 대답했다. 내 자유를 영구히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 단지 국왕의 생존 시에만 제한받기 위해서 말이다.”
현명한 단어 선택 덕분에 칸트는 거짓말 하는 일 없이 검열당국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