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이야기: 지평선 문제Horizon problem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 빛이나 기타 신호가 밤하늘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전달되려면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예를 들어 하늘의 한 특정방향에서 마이크로파배경복사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는 빅뱅 이후 약 130억 년 동안 공간을 표류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와 정반대방향에서 관측되는 배경복사도 130억 년 전에 생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의 온도가 수천분의 1도 이내로 동일하다는 것은 우주의 초창기 때 이 두 지역이 열역학적인 접촉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무슨 수로 수백억 광년이나 멀어질 수 있었을까? 우주의 나이는 130억 년에 불과하므로 이것들이 줄곧 빛의 속도로 멀어져왔다 해도 지금과 같은 거리만큼 멀어질 수는 없습니다.
우주배경복사가 처음 생성된 무렵, 즉 빅뱅 후 38만 년이 지난 시점으로 되돌아가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이 시기에 반대쪽 하늘을 바라봐도 배경복사는 거의 동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빅뱅이론의 계산에 따르면 하늘의 대척점은 약 90억 광년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어난 지 38만 년밖에 안 된 우주에서 90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이 어떻게 같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구스는 이 문제 역시 인플레이션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가 초창기에 있었던 불덩어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 무렵에 이 작은 부분의 온도와 밀도는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었지만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1050배까지 팽창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는 여전히 균일한 분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구스의 이론을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천문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론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적한 결함이란 우주공간의 밀도(Ω)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Ω의 값이 거의 1에 근접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Ω가(혹은 Ω+Λ가) 정확하게 1.0임을 예견했습니다. 즉 구스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완전히 평탄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무렵에 얻어진 관측데이터들은 암흑물질의 존재를 강하게 시사하면서 Ω의 값이 1.3까지 커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물리학자들은 10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논문을 수천 편이나 발표했으나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문스런 이론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레베데프연구소(맥스웰의 ‘빛의 전자기이론’에 의해 존재가 이론적으로 제시된 빛의 압력을 1899년에 실험적으로 확인 발표한 러시아의 물리학자 레베데프Pyotr Nikolaevich Lebedev(1866~1921)의 이름을 딴 물리학연구소)의 러시아 이론물리학자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1948~)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폴 스타인하르트Paul J. Steinhardt와 안드레아스 알브레히트Andreas Albrecht는 1981년에 이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즉 가짜진공상태에서 생성된 하나의 기포가 충분한 크기로 자라나면 그로부터 균일한 우주가 생성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는 하나의 기포가 우주를 가득 채울 때까지 팽창되면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우주가 초창기 부피의 1050배까지 팽창되었다면 하나의 기포만으로 지평선문제와 평탄성문제 그리고 자기홀극문제 등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즉 뚫고 나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충분히 지연되었다면 우주는 매우 긴 시간동안 팽창되었을 것이며 그 결과 우주는 평탄하면서 자기홀극이 거의 없는 공간으로 진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의문이 있는데, 초창기에 어떤 힘이 작용했기에 우주가 무려 1050배까지 팽창되었단 말일까? 이 문제에 ‘우아한 탈출문제’라는 이상한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50여 종의 해답이 제시되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정답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스의 인플레이션이론은 자기홀극과 지평선문제 그리고 평탄성문제를 해결했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우주의 팽창을 유도하고 또 그것을 멈추는 요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렇다 할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