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에두아르 마네


마네의 <뤼엘의 빌라 Villa at Rueil>, 1882, 유화, 92-73cm.
마네는 친구들에게 1884년 살롱에 출품할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말라르메와 나다르도 그가 한 말을 기억했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883년 3월 25일 화실에서 쓰러진 마네는 아파트로 옮겨져 12일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4월 6일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완전히 마비되고 열이 났습니다. 4월 14일 왼쪽 다리가 검게 썩어갔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열에 시달리다 4월 20일에 수술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고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주치의는 방문객의 수를 줄였는데, 말라르메와 나다르 그리고 몇몇 사람만이 방문했습니다.
마네는 4월 30일 오후 7시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51세가 되고나서 3개월7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화가로서의 그의 생애는 스무 해 남짓 되었습니다. 마네에게 빚을 가장 많이 진 사람은 모네였습니다. 4월 30일 마네의 사망소식을 들은 모네는 뒤랑-뤼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방금 가엾은 마네 선생이 사망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의 동생은 제가 관을 메어주기를 바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파리로 가서 검정 양복을 한 벌 맞추어야겠습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올림”(1883.5. 1)
드가는 마네를 가리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마네는 차세대 화가들에게 회화의 새로운 통로를 열어주었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마네의 회화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네는 본능적으로 행동했고, 회화의 기교를 단순화했으며 … 그는 자신의 감각으로 긴급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표현했다.”
마네가 타계한 이듬해 친구이자 평론가 에드몽 바지르는 『마네』를 출간했습니다. 시인 보들레르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화가들에게 권했는데, 마네가 그의 충고를 소중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현대적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주제를 전통주의와 접목하여 새로운 회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마네였고, 그런 시도가 모더니즘의 문을 활짝 열게 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1886년 4월과 5월에 뉴욕에서 소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