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마지막 화실

마네가 1878년 7월 생페테르스부르그 4번지의 화실을 폐쇄하고 암스테르담 77번지에 새로 얻은 화실이 그의 마지막 화실이었습니다. 그는 이 화실을 포함하여 생전에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화실은 몽소 공원 뒤 귀요 가의 화실로 보들레르와 졸라가 드나들었던 곳입니다. 그 후에는 생라자르 근처 외로프 지역의 화실, 생페테르스부르그에서 51번지와 4번지로 주소를 달리 하며 1870년부터 1878년까지 작업했습니다. 새로 얻은 화실로 매일 오후 늦게 말라르메가 찾아왔습니다. 마네는 새 화실 내부를 전반적으로 개조하느라고 이듬해 4월이 되어서야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집 건너 70번지는 스웨덴 사람으로 백작 칭호를 가진 역사화가 요한 게오르그 오토가 화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약 10개월 동안 비우게 되어서 새 화실을 단장하는 동안 그곳에 세 들었습니다. 오토의 화실은 기본적인 가구를 갖춘 보통 화실과는 달리 다양한 종류의 열대성·온대성 식물들이 많아 마치 온실과도 같았습니다. 마네는 피아노와 세우는 커다란 거울, 소파 등을 들여놓았고, 그곳에서 <온실>과 <온실에 있는 마네 부인> 등을 그렸습니다.

마네의 <온실 The Conservatory>, 1878-79, 유화, 115-150cm.
배경에 가득한 아름다운 화초들이 여인을 더욱 우아한 모습으로 보이게 합니다. 산호빛 입술과 귀가 머리 뒤의 꽃의 색과 일치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반지가 시선을 근느데, 남자의 손가락에 낀 시가가 반지를 양분시키듯 부부는 각각 다른 생각에 잠긴 모습입니다. 남자의 머리와 수염이 마네와 매우 닮아서 마네는 자신을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온실>에 등장한 커플은 포부르 생오노르 가에 고급 드레스 가게를 갖고 있던 마네의 친구 줄 기유메 부부였고 부인은 미국인으로 수잔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여인은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앉아 있는 것처럼 포즈를 취했는데, 이런 당당한 모습은 부유층 여인들에게서 발견됩니다. <발코니>에서도 보았듯이 마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독자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이 특색입니다.

마네의 <온실에 있는 마네 부인 Madame Edourard Manet Dans la Serre>, 1879, 유화, 81.5-100cm.
수잔은 남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화실에 오지 않았지만, 마네가 <온실>을 그릴 때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화실에 종종 왔습니다. 마네의 친구들은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말했지만, 마네는 생생한 붓질을 남긴 채 마치려고 한 듯합니다. 수잔은 화면에서와 같이 실제로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남편에게 자기의 얼굴을 약간 푸르고 희게 그려달라고 주문했지만, 마네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온실에 있는 마네 부인>은 기유메의 아내가 앉았던 그 벤치에 앉은 수잔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두 여인의 드레스는 다르지만 같은 회색입니다. 기유메 부인의 드레스는 부드러운 회색에 좀 더 젊은 여성이 입는 드레스로 검정색 리본으로 목을 장식했으며, 노란색 모자와 장갑, 파라솔이 한껏 멋을 낸 여인으로 나타내고 드레스의 단춧구멍을 비롯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묘사했습니다. 반면 수잔의 모습은 덜 정교하게 묘사되었는데, 나이도 들어서인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잔의 목 부분과 소매 끝 부분이 대충 스케치되었고, 손동작도 기유메 부인에 비하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대충 처리한 손에 결혼반지만이 유독 시선을 끕니다.

마네의 <카페 콘서트의 가수 Singer at a Cafe-Concert>, 1878-79, 유화, 73-92cm.
어두운 색의 붓질로 오케스트라와 많은 관객들을 묘사하여 가수의 밝은색 피부, 흰장갑, 푸른빛의 드레스와 대조되게 했습니다. 이런 식의 대조는 무대와 관람석의 거리, 배경의 나무들과의 원근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마네의 <웨이트레스 The Waitress>, 1879, 유화, 77.5-65cm.
이 시기에 카페, 레스토랑, 뮤직카페가 늘어났으며, 웨이트레스는 신종 직업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밤 모습을 보여주는데, 공간이 없도록 꽉 찬 사람들의 구성은 배경의 오른쪽 수직 무늬로 더욱 협소한 느낌을 주고, 왼쪽 가장자리에 왼팔과 드레스 일부만 보이는 인물로 인해 그곳에서 공연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네는 1878년 자연주의를 주제로 8점의 유화를 그렸으며, 카바레나 카페에서 많은 스케치를 그렸습니다. 그는 이것을 <카페에서>와 함께 하나의 대작을 위해 사용하려고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두 개의 별도 그림이 되게 했습니다. 하지만 각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주제가 둘로 나눠졌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마네의 <카페에서 Au Cafe>, 1878, 유화, 77-83cm.
대리석 테이블에 앉아 앞을 바라보는 여인은 엘렌 앙드레이고, 그 옆에 높은 모자의 수염을 기른 남자는 1881년 마네의 제자 에바 곤잘레스와 결혼하게 될 판화가 게라르이며, 그 옆의 처녀는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샹젤리제의 나무 아래서 열린 콘서트 장면을 그린 것으로 <카페 콘서트의 가수>는 붓질이 빠르게 칠해져 있습니다. 마네는 1878년 8월부터 로슈슈아르 불바드와 클리쉬 광장 사이에 있는 뮤직 카페 레이슈쇼팡을 담은 대작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이듬해 살롱에 출품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작품 제목을 <레이슈쇼팡의 카페 콘서트>로 하려고 했다가 작품이 완성될 즈음 그림의 오른쪽 부분을 <웨이트레스>, 왼쪽 부분을 <카페에서>라는 제목으로 둘로 만들었습니다. 그림이 복잡해지는 게 싫어서 둘로 나눠 구성을 간결하게 다듬은 것 같습니다.

에드가 드가의 <카페 콘서트 Cafe-Concert: at les Ambassadeurs>, 1876-77, 종이에 파스텔, 36.8-29.5cm.
카페에서 콘서트를 연 건 1840년대부터였으며, 1860년대와 1880년대 사이에 이런 콘서트가 유행했고, 카페가 무대를 갖추는 등 규모가 커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870년대 파리는 유럽의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도로 포장 계획을 많이 세웠으며, 비대해지는 도시를 위해 근교에 정거장들을 만들어 교통이 원활하게 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거리에는 극장과 카페의 수도 부쩍 늘었습니다. 미국인 제임스 맥카베가 전한 바에 의하면 1867년 극장에 하루 출입하는 사람의 수가 대략 3만 명이었고, 카페와 서커스에 가는 사람의 수는 약 4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따르면 1886년 파리 인구는 약 234만5천 명으로 1831년의 인구에 비해 무려 세 배나 증가한 셈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파리에 카페술집과 카페식당의 수가 늘었으며, 예술가들이 카페를 즐겨 찾았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 예사였습니다. 예술가들은 카페의 실내를 장식해주기도 했으며, 카페의 장면을 스케치하기도 했습니다. 커피가 서유럽에 소개된 건 17세기 후반이었고, 처음에는 항구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금새 여러 도시로 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