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와 동성애가 동등하게 사생활 보호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사점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이성애와 동성애가 동등하게 사생활 보호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사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문제에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할 수 있다면서, 하나는 자원주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적인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자율권을 내세우는 반면 후자는 동성애나 이성애가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에 호소합니다. 자원주의 논리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보편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인간관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동성애와 이성애가 자율적인 개인의 선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반면 실질적인 관점에서는, 전통적인 이성간 결혼의 가치 있는 많은 측면들이 동성간 결혼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성애와 동성애를 같이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둘 다 개인의 선택에서 기인한 행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둘 다 중요한 인간의 선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은 자율권에만 의지하지 않고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에도 존재하는 미덕을 강조합니다. 동성애자의 사생활 보호권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충실한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는 신성한 약속이자 삶의 조화로움을 증진시키는 결합”이며 고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결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방항소법원은 동성애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항소법원에서 이성애와 동성애 모두 인간의 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항소법원 판사는 결혼관계가 중요한 이유가 단지 출산의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상호 지지와 자기표현을 위한 훌륭한 만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판사는 연방대법원이 중요하게 여긴 특성들이 동성혼에도 존재할 수 있다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현재 논의되는 이러한 성행위가 이성간 결혼에서와 같은 목적에 기여한다”고 말했습니다.
스탠리 대 조지아Stanley vs. Georgia 재판에서는 개인이 사적 공간에서 음란물을 소지할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피고의 집에서 발견된 음란물이 ‘고귀한 목적’에 기여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만의 사적 공간에서 즐길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1980년 뉴욕 대 오노프레New York vs. Onofre 사건에서도 누욕항소법원은 이와 동일한 근거로 동성애자의 사생활 보호권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음란하다고 비난받는 도구를 이용해 성적 욕구를 만족시킬” 권리가 존재한다면, 쌍방 합의에 기초한 성행위가 비상적일지라도 그 권리 역시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법원은 이 판결의 중립성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동성애에 관한 그 어떤 신학적, 도덕적, 심리적 판단에 대해서도 견해를 표명하지 않는다. 충분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기관이나 개인들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으며, 실제로도 이견을 보인다.”
법원의 역할은 특정한 도덕적 관점을 법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관점을 배제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샌델은 동성애의 도덕성을 다루지 않고 배제한다는 관용 논리가 상당한 장점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가치에 대해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이 논리를 적용하면 대립하는 양측에게 양보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논리를 따르면 도덕적 견해를 바꿀 필요 없이 사회적 평화와 권리 실현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바꾸도록 설득당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사적 공간에서 동성애를 즐기는 사람들을 묵인하면 됩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이 같은 관용을 도덕성과 관계없이 정치적 합의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샌델은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립적 관용에 두 가지 난점이 있다면서, 첫째, 현실적으로 볼 때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함의가 전혀 없이 오로지 자율권만을 토대로 사회적 협력이 확보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난점으로 그는 권리 존중의 질을 말합니다. 뉴욕항소법원 판례가 보여주듯 동성애를 허용하려면 동성애를 천박한 것으로 폄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음란물과 동등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한 천박함에도 불구하고 허용해야 하는 그런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샌델은 충분한 존중이 이뤄지려면 동성애자의 삶에 대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인정이 필요하다면서 오로지 자율권의 측면에서만 이뤄지는 법적, 정치적 담론에 의해서는 그러한 인정이 이뤄지기 어려움을 지적합니다.
연방대법원은 2003년 로렌스 대 텍사스Lawrence vs. Texas 사건에서 동성간의 이른바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금하는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 판사는 법원의 최종 입장을 밝히면서, 개인적인 도덕 판단을 피하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자유란 생각, 믿음, 표현, 특정한 사적인 행동에 대한 자유를 포함하는 자율적인 자아 개념이다.”
나아가 법원은 케이시 재판에 등장한 진술서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인간 생명의 존재와 의미, 신비로움에 관한 개념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자유의 핵심이다. 만일 국가의 강제로 이러한 인식들에 관한 신념이 형성된다면 그 신념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
텍사스 주의 동성애금지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케네디 판사의 의견에는 또 다른 실제적 이유가 있었는데, 도덕적으로 합당한 삶의 방식을 그릇되게 비하한 점에 있습니다. 케네디 판사는 말했습니다.
“바워스 재판의 쟁점이 단순히 특정한 성행위를 할 권리였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이는 결혼이 단순히 성행위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면 결혼한 부부를 비하하는 셈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샌델은 사생활 보호권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의 성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이는 성생활이 자율권과 선택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선을 구현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