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산 조반니 성당>과 <스포르차 예배당>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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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 124A>, 1559-60
카사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 박물관) 넘버 120A를 보면, 건물 중앙 정사각형으로부터 회랑들이 퍼져 나오도록 고안되어 이는 그의 건축적 공간의 개념이 안에서 밖으로 열리게 하는 데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121A는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선례를 구해 반지름으로 공간을 사방에 골고루 흩뜨린 디자인입니다. 이 디자인에는 불분명한 창 사이의 벽과 벽 구획들이 아주 많습니다. 문제는 밖으로 나온 얇은 둥근 벽과 적당하지 않은 내부 창 사이의 벽들이 중앙에 올려놓게 될 돔의 무게를 견뎌내겠느냐는 점입니다. 이는 중심으로부터 설계된 것만은 분명하지만, 가장자리는 해결되지 않은 많은 요소들로 이뤄져있습니다. 이것은 가냘픈 눈송이 모양의 기하학적 조화로 이뤄져 있습니다.
124A는 미켈란젤로의 가장 인상 깊은 드로잉이면서 르네상스의 어느 제도가의 것보다도 훌륭합니다. 120A에서의 각 쌍의 대각선 회랑이 124A에서는 중앙으로부터 바깥 둘레에까지 흩어지며 더욱 더 넓어졌습니다. 앞서 그린 드로잉들에서의 얇은 둥근 벽 안의 공간과는 달리 이 디자인에서는 단단하고 두터운 돌 안에서 공간을 파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건물이 크고, 구조적으로 두터운 외피에 의해 공간이 대칭적으로 파낸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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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 104A>, 15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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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 121A>, 1559-60
미켈란젤로는 1559~60년 로마에 있는 피렌체인들을 위한 산 조반니 성당을 디자인했지만 불행하게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는 미켈란젤로의 역동적 개념과는 달리 티베르 제방 위에 우뚝 솟게 할 대건축물이었습니다. 그의 드로잉들 가운데 특히 세 점의 드로잉을 보면 상상력과 디자인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을 외벽으로 에워싸인 상자처럼 여기지 않고 역동적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건물 중심으로부터 외벽으로의 공간에 맞추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처럼 간략화하고 통합하는 방법으로 디자인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일반적인 유형인 그리스 십자형 배치를 중앙을 향해 열린 별모양의 방사형 배치로 대체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네 개의 기둥으로 지지되던 반원 혹은 다각형의 돔 형태의 볼트인 큐폴라는 가장자리에 놓인 여덟 개의 벽기둥으로 지지됩니다. 교차부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동심원 형태입니다. 일반적으로 직각을 이루던 모서리 대신 외부의 입면은 둥근 벽을 보여줍니다. 이 형태는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적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리스 십자형의 중앙집중식 건축 양식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의 일반적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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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도>의 변화
A 브라만테의 그리스 십자평형
중앙집중식 건축은 고대 이탈리아에서 사용되었던 양식으로, 4세기 중반에 건설된 밀라노의 산 로렌초 성당은 예외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이 건물에서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4열편 모양의 설계 방식을 발견했으며, 예배당의 세 면에서는 그리스 십자형 도면 혹은 팔각형 도면의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건물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켈란젤로뿐만 아니라 16세기가 배출한 위대한 건축가들이 대부분 이 유형을 채택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브라만테의 최초의 도면 그리스 십자평형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당 그리스 십자형 모두는 중앙집중식입니다. 이 양식의 단점은 많은 군중이 모이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이 점을 보완한 것이 중앙집중식에 긴 형태의 건축물을 부착한 혼합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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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스포르차 예배당>, 15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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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스포르차 예배당>의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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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스포르차 예배당>의 기둥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작품인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의 고대 바실리카 안에 있는 <스포르차 예배당>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 그는 1560년경에 예배당의 내부를 원형과 정사각형으로 디자인하면서 4분의 1 구획들을 둥근 벽으로 하고 세 개의 정사각형이 제단의 깊숙한 부분이 되게 했습니다. 이런 기하학적 구성은 관람자의 눈에 단번에 띄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네 개의 기둥이 중앙의 아치형 천장을 떠받들고 예배당의 활력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돌 하나로 된 거대한 기둥들이 정사각형 각 모퉁이에서 중앙에 집중되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로마의 피렌체인들을 위한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의 요소들이 이 예배당에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바로크 건축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기의 주역인 피에트로의 아들이자 바로크의 대가인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1598-1680)는 이 작은 예배당에서 역동적인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인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는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피에트로에게 대리석 조각을 배웠으며, 유력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일찍부터 창조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재위기에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의 코르나로 예배당을 장식했는데, 비록 소규모이지만 조각, 건축, 회화를 하나의 장엄한 장식적 통일체로 융합시키고자 한 그의 의도로 완성된 걸작입니다. 그 외에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앱스를 장식했으며, 바티칸 궁전의 정면 계단 등을 설계했고, 베르사유 궁의 <루이 14세> 등을 포함한 다수의 흉상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