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가 최후를 장식한 성 베드로 대성당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며 기독교계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르네상스 건축의 집대성입니다. 그러나 1506년 이전의 이 성당은 무질서한 건축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교황 율리우스의 수석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가 이 성당을 1506년부터 개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만테는 영리한 디자이너였지만 엉성한 공학가였습니다. 그는 서둘러 개축하느라 고대 성당의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을 부수었습니다. 그는 중앙의 돔을 떠받치기 위한 네 개의 거대한 돌 받침대를 세우면서 지붕 무게와 측압에 대한 상당한 착오를 범했습니다. 브라만테가 사망한 후 그의 뒤를 이은 예술가들이 그의 본래 디자인을 망쳐놓았습니다. 30년 동안 부수고 짓기를 반복한 성 베드로 대성당 때문에 로마를 찾는 이들에게 그곳은 쇠퇴한 지역으로 보였습니다.


698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의 <새로운 성 배드로 대성당을 위한 나무 모델>

미켈란젤로는 이 모델을 보고 호화스럽기만 한 모습이며, 바보 같은 소와 저능한 양들을 위한 목장 같다고 비난했습니다.


1516~46년에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는 명목상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설책임자였지만 그가 건설한 부분은 거의 없고, 그나마 그가 건축한 것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변경·개수되었습니다. 그는 수년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값비싼 참으로 엄청난 모델을 제작했는데 모델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모델을 보고 상갈로가 예술에 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웃층과 아래층의 지나치게 많은 장소들은 쫓기는 사람들이 숨을 만하거나 위조화폐를 제조하거나 수녀들을 성폭행하거나 다른 악행들을 저지르는 등 헤아릴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기에 충분해서 밤에 교회 문을 닫게 되면 악행자들을 잡아내는 데 스물다섯 명의 남자가 필요할 정도이다.

상갈로는 피렌체의 건축가 집안으로 건축가, 족가가 줄리아노 다 상갈로(1443?-1516), 그의 동생이자 제자인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베키오(1455-1534), 그들의 조카인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1483-1546)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브루넬레스키의 추종자로 자신의 많은 작품들에 브루넬레스키의 양식을 적용했고, 1514-15년 동안 브라만테를 이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했으며, 브루넬레스키가 건설한 산 로렌초 성당의 파사드 설계를 맡았고, 건축가로서 15세기부터 성기 르네상스로의 이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고대 연구에 강한 열정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베키오는 브라만테의 추종자로 간주되었고, 작품에서는 줄리아노보다 위풍당당하고 고전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는 숙부들 밑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1503년경까지 브라만테의 조수로 일했습니다. 브라만테의 영향을 받은 그는 파르네세 가를 위해 일했으며, <파르네세 궁정>을 설계했습니다. 이 궁전은 이후 미켈란젤로에 의해 보완되었습니다. 일 조바네는 1516-46년 동안 명목상 성 배드로 대성당의 건설책임자였습니다.

1546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로 임명된 미켈란젤로는 어마어마한 자원 낭비와 설계상의 오류라는 곤란한 상황에서 이 일에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브라만테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성당에 대한 브라만테의 계획은 혼돈스럽지 않고 분명하며 단순하고 계발적이며 … 아름다운 디자인이고 … 상갈로가 시도했지만 브라만테의 구성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참된 방법으로 마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말한 대로 브라만테의 원래 개념에 충실하면서 그의 공학적 결함을 수정하여 30년이나 지난 건물을 막 지어낸 건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는 상당 부분을 부수고 새롭게 개축했습니다.

성당은 밖에서 보면 꽉 짜인 조각 덩어리로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사방의 공간이 매우 넓고 위로도 크게 트여 있어 빛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각 벽기둥을 이층, 삼층 창문을 지나 위로 똑바로 처마 언저리 돌출부와 지붕과 천장 사이 공간에까지 닿게 해서 격동적이 되게 하고 돔이 벽기둥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습니다. 건물은 바닥으로부터 채광창까지 흐르는 듯한 선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는 평석을 촘촘하게 쌓아올려 벽면을 잔잔한 물결처럼 만들었으므로 벽면은 거대한 구조상의 평면 판이 되었습니다.


701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697-1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도>의 변화

A는 브라만테의 그리스 십자평형이고, B는 상갈로, C는 미켈란젤로의 설계도입니다.


697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을 위한 나무 모델>, 1561년경, 라임나무, 템페라, 500-400-200c,.


702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대성당 돔>


694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브라만테의 원래 디자인을 충족시킨 돔은 반구형으로,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완성된 건축물로 만들었다. 그는 약속대로 돔을 위한 모델을 만들었고, 미켈란젤로 사후의 건축가들이 그의 디자인을 본받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의 내부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왜소해지고 난쟁이가 된 기분이 듭니다. 벽기둥의 받침대보다 작고, 가장 작은 벽토 천사보다도 작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모든 것들이 비례적으로 구성되었지만, 대단히 큰 규모라서 공간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이 거대한 건물 중앙에 그리스도가 반석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그 위에 교회를 건립하겠다고 한 성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이곳 위에 돔으로부터 빛이 쏟아집니다. 이제 우리는 반구형 지붕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라 하면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게 됩니다. 150년의 건축 역사를 가진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가 20여 년 만에 훌륭한 건축물로 완성시킨 것입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미켈란젤로가 최후를 장식한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