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자서전 <피렌체 피에타>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만토바의 안드레아 만테냐 이후 미켈란젤로가 처음으로 자신의 묘비를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 성당에 있는 자신의 묘지를 피에타로 꾸미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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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렌체 피에타>, 1547-55년경, 대리석, 높이 2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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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렌체 피에타>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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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렌체 피에타>의 부분
그는 네 사람으로 구성된 피에타를 제작했는데, 이는 그가 가장 야망을 갖고 작업에 임했음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복잡한 구성이라서 마음에 흡족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234cm 높이의 대리석에 네 사람을 비례적으로 상관관계가 되게 구성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가 스물세 살 때 제작한 <로마 피에타>와 이 작품을 비교하면 성모에 대한 묘사가 아주 달라 그의 예술적 사고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엄숙하면서도 숭고한 표정 대신 아들 가까이에 얼굴을 갖다 댄 것으로 비탄을 암시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그 뒤에 서 있는 니코데모스에 비해 너무 작은데, 돌이 충분하지 못해 마리아의 얼굴을 완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작업 도중에 원래의 구상을 변경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또한 채석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새로운 구상을 했을 경우 작업하던 돌을 버리고 충분한 크기의 돌로 다시 작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죽은 아들의 시신을 떠받칠 마리아의 얼굴과 그리스도의 왼쪽 다리를 묘사할 돌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을 완성시키려면 왼쪽 다리를 따로 제작해서 붙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조각적 원리에 어긋나는 일로 그는 한 덩이의 돌로 조각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기할 점은 대부분의 관람자들이 그리스도의 왼쪽 다리가 없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이것을 불완전한 상태로 보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걸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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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렌체 피에타>의 부분
그리스도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도상학적으로 니코데모스여야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은 늙은 미켈란젤로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봅니다. 자신을 남몰래 그리스도를 추종했던 니코데모스의 역할로 삽입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자서전적 작품으로, 그도 그리스도가 필요로 할 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입니다. 이것을 완성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자신의 묘비를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비문을 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가 왜 이 작품을 완성시키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대리석의 질에 낙담했으며, 하인이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데 염증을 느껴 망치로 작품을 망가뜨렸다고 이야기를 꾸며냈습니다. 많은 미술사학자들 또한 개인적으로 중요한 이 작품을 미켈란젤로가 왜 망가뜨렸는지에 관해 갖은 억측을 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망가뜨린 연유는 명확치 않습니다. 단지 추측해보자면 자신의 묘비를 자신이 직접 깎는 것은 죽어야 할 운명에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피에타를 완성하는 것은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더 이상 작업을 계속해야 할 목적이 사라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조각은 이후 티베리오 칼카니가 미켈란젤로의 허락을 얻어 완성시켰습니다. 칼카니가 복구한 부분은 부서졌던 그리스도의 신체 왼쪽 부분이며, 미완성의 그리스도에다 새 다리를 끼우려는 의도로 다리 부분을 말끔히 다듬어 못자국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