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량 선고에 대한 정신건강 논리와 인과응보 논리
형량 선고 시에 피해자의 증언이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근거에 의존하는데, 하나는 정신건강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인과응보 논리입니다. 정신건강 논리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에 동참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처벌이 피해자에게 위안을 제공한다면, 피해자는 처벌의 종류를 결정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도록 허용하는 법에서 주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 정신건강 논리입니다. 이는 법정을 소란스러운 토크쇼 현장처럼 만듭니다. 텍사스 주에서는 형량 선고 이후 피해자나 가족이 법정에서 가해자에게 심한 말을 퍼부을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정신건강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범죄자 처벌의 효과와 범죄자 처벌의 목적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이 인과응보 논리로서 배심원단에게 범죄의 도덕적 무게감을 충분히 인식시키기 위해 피해자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인과응보 논리에서는, 피해자가 감정을 배출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고 도덕적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피해자 진술이 형량 선고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이 범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 판사가 형향 선고에서 그것의 비중을 줄이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샌델은 인과응보 논리는 피해자 증언을 옹호하는 효과적인 근거가 되지만, 두 가지 반박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첫째, 피해자들의 성품이나 사회적 지위, 부의 정도를 증거로 사용하는 건 어떤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보다 더 가치 있다는 가정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살인자가 네 자녀의 아비를 죽인 것과 아무도 슬퍼해줄 사람이 없는 미혼의 부랑자를 죽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설령 살인의 도덕적 죄과가 다른 살인보다 더 크다 할지라도 범죄자가 애초에 알지 못한 어떤 측면 때문에 처벌을 높이는 건 불공정하지 않느냐는 반론입니다. 상대의 신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저질러진 사건의 경우 죽은 사람이 범죄자냐 성직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져야 하느냐는 논리입니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피해자 진술을 허용하고 있으며, 의회는 피해자 진술 조항을 1994년 연방범죄법안에 포함시켰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168명이 사망한 오클라호마시티 폭파사건 피해자들이 재판에 입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누군가 범죄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 사람은 구경하는 반관자의 자리가 아니라 범죄를 심판하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한다.”
샌델은 정신건강 논리가 도덕적 책임과의 분리를 나타낸다면 인과응보 논리는 도덕적 책임을 회복하려는 열망을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후자의 충동을 전자의 충동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절하고 현명하게 시행될 경우 피해자 증언이 범죄의 잘못을 명백하게 조명함으로써 정의 실련에 기여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범죄를 심판하는 과정의 한가운데’ 놓는 일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범죄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도덕성보다 피해자의 심리적 욕구가 우선시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될 경우 개인적 복수에 불과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