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신간: 그림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1. 정치와 미술: 프랑스 혁명과 프로파간다 회화



재정파탄과 혁명의 불길

 

이솝은 행운을 두고 다툰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행운에 대한 태도에 교훈을 줍니다.

어느 날, 행운의 여신이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인간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일이어서, 그날도 누군가에게 행운을 주려고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싸우는 두 남자를 보았습니다. 왜 싸우는가 싶어,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놀랍게도 자기 때문에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는 행운의 여신을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쪽에서 찾아가 붙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남자는 행운의 여신은 제 발로 오는 것이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게, 이 사람아” 하고 ‘찾아가야 한다는 남자’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꼴을 좀 보라구, 매일 뼈 빠지게 일하면서, 그것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 아닌가? 세상에는 궁전 같은 집에서 예쁜 여자들 속에 파묻혀, 허구헌날 맛난 것만 먹고 놀면서 사는 자들도 있어. 그런 신분이 되고 싶으면, 이런 곳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어서는 소용이 없다구. 개도 돌아다니면 몽둥이든 뭐든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일세.”

거기에 대해 ‘기다려야 한다는 남자’가 말했습니다.

“무슨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건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행운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지방을 순회하는 연예인이나 행상들은, 금세 큰 부자나 왕자가 되게? 그렇지 않다는 증거로, 그들은 늘 똑같은 행색을 하고 언제까지나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보게나, 속담에도 행운은 누워서 기다리라는 말이 있지 않나? 요컨대 행운이란 건 기다려야 하는 거라네. 게다가, 행운의 여신은,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야, 인간 여자와 마찬가지로, 쫓아다니면 쫓아다닐수록 달아나는 법이라구.”

“아니, 그렇지 않아. 행운의 여신은 양갓집 규수와 마찬가지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어떻게든 이쪽에서 계기를 만들어, 조금이라도 기회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끌어당겨야 자신의 것이 되는 거야. 게다가 큰 운과 작은 운이 있으니, 기왕이면 큰 운을 붙잡아야 손해를 안보지, 안 그래? 그것 때문에라도, 무조건 멋진 행운의 여신을 찾아서 여행을 하는 수밖에 없어. 이렇게 작은 마을이나 기웃거리는 여신이라면, 어차피 대단한 여신도 아닐 거야.”

두 남자는 더욱 더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하며 계속 싸우느라, 바로 옆에 행운의 여신이 와있는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두 남자의 언쟁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한 남자는 운을 찾아 길을 떠나고, 또 한 남자는 운이 굴러들어 오기를 기다리기 위해 집에 틀어박혔습니다.

그런데 난처해진 건, 두 남자에게 무시당하고 그 자리에 홀로 남은 행운의 여신. “모처럼 행운을 가져왔는데 ...” 하고 중얼거리며, 하는 수 없이 옆 마을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운을 찾아 길을 떠난 사람, 운이 굴러들어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혁명은 오로지 인간이 성취해야 할 과제이므로 행운의 여신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왕정을 지지하는 세력과 공화정을 지지하는 세력의 다툼, 공화정을 지지하는 혁명세력 가운데서도 급진적으로 추진하려는 좌파와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서서히 추진하려는 우파의 다툼이 치열해서 무수한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초긴장상태였습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지러운 시기에 정치에서 그리고 미술에서 막강한 권력을 쟁취한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화단의 나폴레옹’으로 불린 자크-루이 다비드입니다. 이솝의 입장에서 보면 나폴레옹은 운이 굴러들어 오기를 기다린 사람이었고 다비드는 운을 찾아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행운의 여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불똥이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에 떨어지면서 혁명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프랑스는 영국에 대적하여 1776~78년 조지 워싱턴이 이끈 식민지 군에 보급물자와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1778년 이후에는 육해군을 직접 지원하여 분열된 영국군의 틈을 활용하여 새러토가와 요크타운에서 영국군 전체에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783년 11월에 미국의 13개 주가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1783년에 체결된 베르사유조약은 미합중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프랑스가 1763년에 상실한 세네갈의 해관들과 서인도 제도의 세인트-루시아와 토바고를 영국으로부터 되돌려 받게 해주었으나, 참전에 든 엄청난 지출로 부채가 더욱 늘어 정부의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정부는 재원을 늘여야만 했으므로 지주인 특권층에게 그들의 정당한 몫을 납부하게 하는 세제개혁을 단행해야 했지만, 개혁은 번번이 압력집단들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졌고, 새로 부상한 중산계급과 귀족계급의 마찰로 국운을 가르는 긴장감마저 맴돌았습니다. 중산계급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지만, 귀족계급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 가난에 허덕이는 다수 시민의 분노였습니다. 시민들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혹사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귀족계급에 대해 증오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귀족과 성직자의 수가 50만 명 미만이었던 데 반해 시민의 수는 2천5백만 명이었으므로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습니다. 1788년의 흉년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빵 값의 앙등으로 굶주린 사람의 수가 한층 늘어난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체에 대한 이론과 신념 그리고 시민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계몽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시민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성적으로, 시대적으로 당연했습니다. 이런 취지의 글이 여기저기에서 발표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면서 폭넓은 공감대가 신속하게 형성되었고, 시민들의 분노가 혁명의 불길로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군사력이 수세의 상황에 몰리자 물가의 폭등, 소요, 약탈이 연이어 발생했고, 1789년 4월 28일 파리의 교외지구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는 약 300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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