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심약한 영혼의 부르짖음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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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536-41, 프레스코, 시스티나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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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바르톨로메오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그리스도 바로 아래 왼쪽에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로렌스가 석쇠를 들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오른손에 칼 왼손에 살가죽을 들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성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축 늘어진 살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지옥 위에 매달린 모습으로 표현했지만, 성인의 손에 잡혀있는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죄를 고통스럽게 여기게 했고,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구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1535년 9월 1일 반포된 모투프로프리오motuproprio(교황의 사적인 포고령)로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의 최고 건축가·화가·조각가로 임명되었으며, <최후의 심판>에 집중하기 위해 그동안 연기했던 많은 작업들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콘디비는 클레멘스 7세가 궁리 끝에 <최후의 심판>을 시스티나 예배당에 장식하기로 결정했다고 적었습니다. 이때 모세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표현한 페루지노의 작품들과 미켈란젤로가 제작했던 두 반월창이 사라졌습니다. 가장 큰 손실은 페루지노의 제단화 <성모 승천>이 사라진 것인데, 원래 이 예배당은 승천하는 성모에게 봉헌되었던 교회입니다. 따라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원래의 예배당 장식이 지닌 일관성을 크게 손상시켰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1541년 10월 31일 ‘성자들의 밤’에 공개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지상과 지옥은 아래, 천국은 상단에 위치하며 죽은 자는 그리스도의 오른쪽, 저주받은 자는 왼쪽에 서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구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대작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를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어서려고 하는 모호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다리는 <모세>의 다리를 반대로 한 것처럼 보이고, 상체는 <부활한 그리스도>와 닮았으며, 수염은 없고 배에 우람한 근육이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가 오른팔을 올리며 일어서서 저주받은 자들을 지옥으로 던지려는 모습으로 이해하지만, 그의 표정은 부드러우며 저주받은 자들이 모두 지옥으로 빠지기 전에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제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모는 그리스도의 둥근 광채 안에 앉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십자가 처형 드로잉>에서도 성모를 이렇게 움츠린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도와 성인들에 에워싸여 있습니다. 사도와 성인들은 아래의 사람들에 비해 훨씬 크게 묘사되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아래서 올려다볼 때 비례를 조절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의도적으로 크게 부각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축복받은 영혼들로 하늘나라에 속하게 된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군대를 이루는 이들에게는 죄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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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당나귀 귀를 한 미노스가 뱜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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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스틱스 강의 나루지기 카론이 최후의 심판을 받은 자들에게 배에서 내려가라고 노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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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하단 맨 끝에 당나귀 귀를 한 미노스가 뱀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있는데 뱀이 그의 몸을 휘감고 그의 성기를 물고 있습니다. 카론Charon(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 강Styx의 나루지기)은 성난 모습으로 노를 들어 운명이 정해진 영혼들을 위협하며 자신의 보트에서 쫓아냅니다. 최후의 심판을 받은 영혼들은 불구덩이 지옥의 낮은 곳으로 떨어지도록 저주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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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공포에 휩싸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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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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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죽은 자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벽화 하단 왼쪽에는 무덤으로부터 죽은 자들이 살아나오고, 가톨릭의 교리대로 뼈들은 몸을 만나 부활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활한 몸은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승천하지만 프레스코 반대편을 보면 저주받은 자들은 과격한 물리적 방법으로 지옥 속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옥은 부분적으로 단테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지만 인간의 추락에 관한 표현에서 그의 상상력도 작용했습니다.
아놀드 하우저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을 완전히 내바치고 속세적·육체적·육감적인 일체의 것을 자신 속에서 용해 소멸시키려는 욕망이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르네상스의 구도에서 보이는 화면의 공간적 조화는 사라지고 대신 비현실적·비연속적일 뿐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기준에 의해 구성되어 있지도 않으며 통일적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투시도·환영주의의 효과를 버리고 하단의 인물들에 비해 상단의 인물들을 너무 크게 그렸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최초의 근대 작품이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표현이 풍부했던 중세의 작품과는 유사한 데가 있습니다. 하우저는 이 작품을 아름답고 완전무결한 형식에 대한 매우 힘들여 얻은 항의이자 일종의 선언이며, 그 선언의 형식 무시 자체는 공격적이고도 자기 파괴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보티첼리나 페루지노가 동일한 장소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예술적인 이상을 부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자신이 일찍이 그곳 천장화를 그릴 때 추구했던 목적도 부정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이 예배당 전체의 존재 이유이자 르네상스의 모든 조형예술의 근원이 되었던 ‘미’의 이념들도 파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결코 무책임한 일개 괴짜의 실험작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의 가장 명망 높은 예술가의 손에 의해서, 그것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교황의 개인 예배당의 정면 벽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미술품이었다. 그야말로 한 세계의 몰락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195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