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서문: 미술에서 길을 찾다
중, 장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어느 날 “이것이 내가 꿈꾸어온 나의 인생의 전부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힘들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고비를 하나씩 넘길 때마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고, 조금씩 불어나던 체중이 이젠 쉽게 줄어들 것 같지 않으며, 눈은 침침해지고, 몸 여기저기서 이상증세가 나타나는 걸 느낍니다. 거울이 말합니다. “자, 이제 네 역할은 끝났어. 무대에서 내려가 노후나 준비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직은 아냐, 아직 해야 할이 남았어, 정작 하고 싶은 일은 시작도 못 했는걸. 돈도 더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과거를 보상을 받아야 해” 하고 강변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습니다.
억울하다는 느낌이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절로 엄습해옵니다. 축복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젊었을 때의 생각이 떨쳐지지 않습니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 권력, 지위, 물질의 소유를 통해 행복하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경주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보신하든가, 헬스클럽에 가입하든가, 에어로빅이나 요가를 배우든가, 찜질방에 자주 갑니다. 여성의 경우 성형수술을 할 것입니다.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생각되면 사회에 더욱 잘 적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처세와 자기 계발에 관한 책을 사서 읽거나 그런 것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에 가입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걸 곧 깨닫게 되는데,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정작 행복의 구성원들인 배우자와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무용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교외에 전원주택을 장만하여 세상을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조그만 정원을 가꾸면서 자위의 삶을 선택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여행을 가고, 고급식당에 가서 맛난 음식을 즐기며, 음악회에 가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등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취미생활을 합니다. 술과 도박 심지어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을 멀리한 채 무절제한 쾌락을 추구하고 값비싼 여가생활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물론 아닙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에서 매일 저녁 홀로 만찬을 즐기면서 금, 은그릇에 담긴 40종의 요리를 골라 먹었습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데 무려 498명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그와 비교하면 우리는 엄청나게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가는 슈퍼마켓에는 루이 14세가 맛보지 못한 음식들로 즐비합니다. 전속요리사가 없어도 우리는 식당에 가서 이탈리아식, 중국식, 일본식, 프랑스식, 미국식, 인도식, 태국식, 페루식 등 골라 먹을 수 있습니다. 숙련된 요리사들이 우리를 위해 만찬을 준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속재단사가 없지만 언제든지 맵시 있는 옷을 구입할 수 있고, 자가용 비행기가 없지만 저가 항공노선 표를 사면 숙련된 조종사가 루이 14세가 꿈도 꾸지 못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주며, 양초 심지를 조절해줄 하인은 없지만 전등 스위치만 켜면 곧바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인이 없지만 휴대전화가 있으며, TV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우릴 위해 준비된 많은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이 넘쳐납니다.
한국인의 수명은 1955년에 비해 26년이 늘었고, 연간 소득이 열다섯 배로 늘었습니다. 부자는 더 부유해졌고,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그보다 더 큰 비율로 좋아졌습니다. 과거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그들이 꿈도 꿀 수 없던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스스로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순간 행복은 달아난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생애 순간순간 충분히 몰입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밀은 “인간 사고방식에 근본적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삶의 질적 향상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행복이 사고방식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일상의 경험을 어떻게 취사선택하고 해석하는가 하는 태도에 달린 것입니다. 태도, 즉 애티튜드attitude는 라틴어 앱투스aptus에서 온 말로 ‘준비’, ‘적응’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행복에 준비, 적응하는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중, 장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일상은 일주일에 40시간가량 직장에서 보내면서 시작되는데, 30시간 일하고, 나머지 10시간은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공상하며 일과 무관한 짓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가 20시간 가운데 TV를 시청하는 데 7시간, 신문과 잡지를 포함하여 독서에 3시간, 운동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데 2시간,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7시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8시간 수면을 취하면, 깨어있는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은 50시간 남짓인데, 식사, 운전, 쇼핑, 요리, 빨래, 물건정리, 사우나, 허공 쳐다보기 등으로 다 써버립니다.
우리 시대의 모순 가운데 하나는 여가가 충분한 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지만, 조상들보다 더 삶을 즐긴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는 기회로는 충분하지 않고 기회를 이용하는 준비, 적응의 상태가 요구되는 걸 말해줍니다. 행복을 느끼는 충분한 몰입이 요구됩니다. 주의attention을 집중하여 몰입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이 생기는 것입니다.
태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심리적 무질서로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심리적 엔트로피psychic entropy라고 합니다. 심리적 엔트로피의 반대가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으로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주의를 목표를 위해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느낌” 또는 “물 흐르는flow 것처럼 평안한 느낌”이라고 말한 데서 플로우경험flow experience이라고도 합니다. 플로우는 심리적 엔트로피의 정반대이므로 반대란 말을 앞에 붙여서 네겐트로피negentropy라고도 합니다. 플로우경험 혹은 최적경험을 한 사람은 심리적 에너지가 스스로 선택한 목표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대부분 사용되기 때문에 더욱 강하고 자신에 찬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플로우경험이 자아를 복합적으로 발전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복합적이란 분화와 통합이란 두 가지 심리과정을 거쳤다는 말입니다. 분화는 자신이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통합은 그 반대의 경우로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아이디어들과 합하려는 경향입니다. 복합적 자아는 두 가지 경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자아를 말하며,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순응적이지 않을 때 자아가 복합적으로 발전합니다.
플로우경험은 사고, 의도, 감정 그리고 모든 감각이 하나의 목적에 집중되는 것으로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내면의 통합뿐 아니라 세상과도 더욱 일치되는 느낌이 생깁니다.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제공하고 자신감을 향상시키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기대했던 것을 성취하거나 욕구를 충족했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혹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성취했을 때에도 행복한 감정이 생깁니다. 막상 일이 벌어지는 순간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나중에 회상할 때 그것이 행복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변했다는 걸 깨닫게 되고, 복합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성 혹은 영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지능intelligence, 혹은 지성intellect을 우리는 추상적 사고, 이해, 기억, 그리고 창의력과 관련된 능력으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계발한 사람을 엘리트라고 합니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우리는 놀라울 만큼 지성을 계발하고도 자기 영혼을 지배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많은 엘리트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삶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고방식에 개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지능이나 지성을 계발해서 얻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므로 행운입니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