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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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대리석, 높이 14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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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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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많은 작업들이 지연되었지만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드높았으므로 주문은 줄지 않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피렌체 공화정의 지도자 바치오 발로리를 위해 작은 대리석 조각인 <아폴로/다윗>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도 미완성으로 남겼고, 발로리에게 보내지 못했습니다. 1530년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세력이 다시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을 <아폴로/다윗>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윗이나 아폴로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입니다. 어깨 뒤로 불분명한 형상의 덩어리가 있는데, 이를 화살통으로 해석하면, 이교도의 신 아폴로가 되고 돌팔매 끈으로 해석하면 성서적 영웅이며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됩니다.

<다윗>보다 25년 뒤에 제작된 이 작품에서 조각의 본질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미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화살통에서 막 화살을 빼내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 조각은 세부적 묘사는 아주 단순하지만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풍부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특별한 힘의 소모도, 거창한 몸짓도 없습니다. 신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단단하게 응집되었고, 완전히 숙련된 미를 지녔으며, 뒤 공간에도 생동감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다윗>은 빈약하며 허전해 보이며 <바쿠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넓은 면, 넓게 벌린 팔다리, 돌에 구멍을 뚫은 것 등은 젊은 시절의 양식으로 여겨집니다. 누드 신체와 역동적인 표현은 미켈란젤로가 추구한 점입니다. 이런 점은 <다윗>을 완성한 직후 구상한 <성 마태오>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그는 <켄타우로스의 전투>를 제작할 때부터 이런 요소에 관심을 기울였고 성숙한 나이가 되면서 동일한 과제를 더욱 더 효과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켄타우로스의 전투>는 현존하지 않지만, 마르칸토니오의 동판화로 전해지는 몇 가지 복제품들을 보면 미켈란젤로가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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