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기능적 요새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군사 무기나 요새를 디자인하는 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레오나르도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 역시 요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후원자들은 예술가에게 조각이나 그림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공학이 요구되는 정교한 무기와 군사기지를 설계하도록 했습니다.

1527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신성 로마 황제 카알 5세가 밀라노와 나폴리의 영토를 놓고 벌인 권력싸움으로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맡고 있는 메디치 예배당 건축을 잠시 미뤄야 했습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회유와 공격의 수법을 쓰던 클레멘스 7세와 메디치 가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이 제국군들의 침입으로 오르비에토로 도피하자 피렌체는 다시 한 번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산 로렌초 성당의 모든 작업은 중단되었고, 미켈란젤로는 시뇨리아 광장에 세울 작품을 구상해야만 했습니다. 1529년 교황과 동맹을 맺은 카알 5세에 맞서 전쟁을 시작한 피렌체 공화국은 1월, 미켈란젤로를 제9 민병대의 위원에 임명했고, 4월에는 사령관 겸 요새담당 행정관장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는 피사와 리보르노의 방어태세를 시찰하고 페라라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530년경 피렌체의 내부반란으로 메디치 가가 복귀하자 그는 다시 메디치 예배당의 무덤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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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요새 디자인>, 1528-29년경, 41-57cm.

미켈란젤로는 별모양으로 방어에 중점을 둔 공격적인 요새를 디자인했는데, 각이 진 커튼처럼 높게 올린 뱍 위 거점에서 총이나 대포를 쏠 수 있게 해서 최대한의 공격과 방어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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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요새 디자인>


이 시기에 그려진 요새 드로잉은 전쟁과 관련된 유물들이 그렇듯이 다양한 기능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상상력이 뛰어난 레오나르도는 능란한 솜씨를 발휘하여 감동적인 디자인을 많이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실질적인 디자인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산 로렌초 외관을 장식할 때도 직접 채석장에 가서 많은 양의 대리석을 골라 운반해왔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바실리카에 돔을 올려놓을 때는 받침대를 고안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단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그리고 효능이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1529년과 1530년 사이 그가 디자인한 요새가 실제로 건립되지는 않았지만, 현존하는 드로잉을 보면 매우 실용적으로 고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잡한 구조의 요새는 적으로부터 대포의 공격을 받을 때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에 관련된 그의 계획들 중 실현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가 현실적으로 기여한 바는 기존의 요새들을 몇 군대 보강한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은 이후 요새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미국 동란 때 사용된 요새와 프랑스 동쪽 국경에서 사용된 요새 마지노선은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을 십분 활용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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