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파배경복사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조지 가모브가 과학사에 남긴 다음의 업적은 초기우주에서 가벼운 원소를 탄생시킨 일련의 핵반응 과정을 규명한 것입니다. 그는 이를 우주적 ‘선사시대의 취사장prehistoric kitchen of the universe’이라고 불렀습니다. 빅뱅 때 생성된 뜨거운 열 속에서 우주를 이루는 모든 원소가 요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핵합성nucleosynthesis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양을 계산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모브는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로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멘델레예프Dmitrii Ivanovich Mendeleev(1834~1907)가 1869년에 만든 멘델레예프Mendeleev의 주기율표periodic table에 나와 있는 모든 원소가 빅뱅의 열에 의해 연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모브와 그의 학생들이 펼친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의 순간에 우주는 초고온상태에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한데 뭉쳐 있었으며, 어느 순간부터 핵융합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수소(H)원자가 헬륨(He)원자로 변환되었습니다. 양성자들이 엄청난 고온상태에 놓이면 서로 결합하여 수소 다음으로 무거운 원소인 헬륨을 생성하고, 그 후 수소의 원자핵과 헬륨의 원자핵들이 충돌을 반복하다보면 그다음으로 무거운 원소인 리튬(Li)과 메릴륨(Be) 등이 만들어집니다. 가모브는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주기율표에 나와 있는 모든 원소가 생성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모브는 이 과감한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아우트라인을 작성했고, 그의 박사과정 제자였던 랄프 알퍼Ralph Alpher(1921~2007)가 세세한 부분을 정리해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가모브는 논문의 공동저자 명단에 한스 베데Hans Albrecht Bethe(1906-2005, 독일계 미국 물리학자로 196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의 이름을 본인의 허락도 없이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논문은 학자들 사이에서 알파-베타-감마 논문(알퍼, 베데, 가모브를 의미함)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가모브에 따르면 우주질량의 25%를 차지하는 헬륨은 빅뱅의 고열에서 비롯했습니다. 현존하는 별과 은하의 성분을 분석하면 수소가 약 75%이고 25%가 헬륨이며 나머지 원소들이 극소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모브의 창조시나리오는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별 어려움 없이 작성되었지만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점을 노출했는데, 가벼운 원자핵의 경우에는 잘 들어맞았으나 양성자와 중성자가 5개 혹은 8개인 원소는 지극히 불안정해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가교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원소는 5나 8보다 훨씬 많은 개수의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모브의 이론에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모든 원소가 빅뱅의 열기 속에서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가모브의 과감한 이론은 폐기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가모브의 관심을 끈 또 다른 문제는 빅뱅이 엄청난 고온상태에서 진행되었을 경우 그 열에너지의 여파가 지금도 우주공간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빅뱅을 증명하는 화석이 될 것입니다. 폭발의 잔해가 오늘날까지 복사에너지radiant energy의 형태로 남아 있을 것이란 믿음 아래 가모브는 1946년 빅뱅이 초고온상태에서 응축되어 있는 중성자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우주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초고온 응축물을 흑체black body로 보고 여기에 흑체복사이론을 적용해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흑체란 빛에너지를 가장 잘 흡수하는 물체로 모든 종류의 빛을 가리지 않고 흡수했다가 독특한 형태로 복사radiation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과 용암, 불 속에서 타는 석탄 그리고 고온 세라믹 등은 황-적색 불꽃을 내면서 흑체와 같은 방식으로 복사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사실 흑체복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18세기의 도자기공 토머스 웨지우드Thomas Wedgwood였습니다. 웨지우드는 도자기의 원료를 불가마 속에서 구울 때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재료의 색깔이 붉은색에서 노란색, 흰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처음 확인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물체의 색깔로부터 대략적인 온도를 유추할 수 있으며 또한 물체의 온도로부터 외관상의 색을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뜨거운 물체의 온도와 그로부터 방출되는 복사에너지의 상관관계를 처음 규명한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1858~1947)로 그는 1900년 흑체복사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아버지가 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흑체복사이론theory of black body radiation을 이용해 태양의 온도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양은 주로 노란색 빛을 방출하며 흑체의 온도는 약 6,000K이다. 붉은색 빛을 주로 방출하는 오리온자리의 적색거성red giant 베텔기우스Betelgeuse('거인의 어깨‘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 오리온자리 중의 1등 별)의 온도를 흑체복사이론으로 추정하면 약 3,000K이며 불에 타고 있는 석탄의 온도와 비슷합니다.
가모브는 1948년에 빅뱅 때 생성된 복사에너지가 흑체복사와 같은 성질을 갖는다는 주장을 펼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흑체복사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온도이므로 그가 다음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우주의 온도를 계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랄프 알퍼와 로버트 헤르만Robert Herman(1914~97)과 함께 연구한 뒤 가모브는 “우주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진화과정을 추적하는 중에 우리는 우주의 온도가 절대온도 5K(영하 섭씨 268도) 근처까지 식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계산한 온도는 현재 알려진 2.7K와 거의 비슷했습니다. 빅뱅 후 38만 년 지난 뒤 우주의 온도는 3,000K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원자들이 서로 충돌해도 낱개의 입자로 분해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무렵부터 안정적인 원자들이 형성되었으며, 빛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먼 길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방출된 복사파가 현재에도 우주전역을 떠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