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2세의 무덤
작품을 Daum'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529-1
줄리아노 부기아르디니(?)의 <터번을 쓴 미켈란젤로의 초상>, 패널에 유채, 49-36.4cm.
529-2
줄리아노 부기아르디니의 <터번을 쓴 미켈란젤로의 초상>, 패널에 유채, 55.5-43.5cm.
529-3
마르첼로 베누스티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릴 무렵의 미켈란젤로의 초상>, 1535년경
1512년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장식을 마친 미켈란젤로는 다시 조각에 전념했습니다. 1505년 그에게 무덤장식을 의뢰했던 율리우스가 1513년 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율리우스는 두 추기경 로렌초 푸치와 식스투스 4세의 조카 레오나르도 로베레로 하여금 자신의 무덤이 제대로 완성되는지 지켜볼 것을 당부하면서 무덤에 사용할 돈 1만 두카트를 남겼습니다.
531재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2세의 무덤>, 1505-45, 빈콜리의 성 베드로 성당
위층 공간은 기존의 벽을 창의적으로 활용했지만 어수선하며 반월창 때문에 높이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대좌가 아래층을 필요한 높이까지 들어 올려 줍니다. 아래층에는 폰테시에베의 아름다운 부조가 1540년대에 사라진 장식문화를 보여주는 반면 위층은 매우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벽기둥pilaster은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이며, 이를 떠받치는 코니스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위쪽의 두 단을 분리합니다. 상당히 세련되고 지적인 디자인이지만, 아래층과의 부조화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상단의 인물은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와 그의 공방, 교황인물상은 토마소 보스콜리가 제작했습니다.
535사본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2세 무덤을 위한 드로잉의 재구성 과정>, 1505
536사본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2세 무덤을 위한 드로잉의 재구성 과정>, 1513
537사본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2세 무덤을 위한 드로잉의 재구성 과정>, 1516
율리우스의 뒤를 이은 교황 레오 10세는 조각보다는 그림에 더 관심이 많았고, 그의 취향은 당시 율리우스를 위해 스탄차에 벽화를 그리고 있던 라파엘로의 그림이었습니다. 또한 레오는 미켈란젤로를 다루기 까다로운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이 진행되는 데도 그에게 어떤 일감도 주지 않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계약을 맺은 이후 계속 작업을 연기해오던 율리우스의 무덤에 대해 1513년 5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재건한 성 베드로 성당에 독자적인 구조의 무덤을 제작하기로 했지만 이를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전통적인 방법인 벽무덤wall-tomb을 제작하고 조각의 수도 줄이기로 했습니다. 1513년부터 1516년 동안 그는 이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레오의 명으로 산 로렌초 성당 외관을 장식하고 메디치 예배당의 무덤을 의뢰받았기 때문에 이 작업은 또다시 연기되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거대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명성에 흠이 되는 비극으로 여겼기 때문에 원래보다 훨씬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1545년 2월 무덤을 완성하고서야 계약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최소한 여섯 개의 기념비적인 작업을 주문받았고, 최소한 네 차례에 걸쳐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제작하는 데 서두르는 법이 없었으므로 많은 작품을 양산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율리우스의 무덤을 위해 제작한 세 점은 <모세>, <라헬>, <레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