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국가를 가르는 경계선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공공영역의 브랜딩이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시 당국의 명칭 사용권을 판매하도록 도와주는 ‘시티 마케팅’ 회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2003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는 뉴욕 역사상 최초로 최고마케팅책임자를 임명했는데, 그의 임기 초반에 성사된 거래 중 하나가 스내플Snapple을 뉴욕의 공식 음료수로 지정한 것입니다. 이는 1억6,600만 달러짜리 계약이었습니다.
기업과 국가를 가르는 경계선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상업용 첩보위성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꼭 필요한 분야에서조차도 통치와 마케팅이 뒤얽히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수년 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고문단은 영국의 이미지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영국을 “세계적인 박물관이 아니라 세계를 이끄는 선두적인 나라”로 브랜드 재구축rebranding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전통적인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가 투명하고 세련된 유리 부스로 교체되었으며, 투박하게 생긴 런던의 택시들이 날씬한 유선형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 체신부는 루니튠스에 등장하는 만화 주인공 벅스 버니Bugs Bunny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우표에는 응당 역사적인 인물이 들어가야지 기업 캐릭터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메일, 팩스, 페덱스Federal Express와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 우체국은 그러한 캐릭터 사용이 우편사업이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벅스 버니 우표를 한 장 사서 우편물에 부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보관할 때마다 우체국 수익이 32센트 늘어납니다. 우체국 수익 중에서 우표수집이 기여하는 정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체신부는 워너브라더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전국 500곳 이상의 우체국에서 루니튠스Looney Tunes 넥타이, 모자, 비디오 등 관련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체신부라는 브랜드 자체를 이용하는 포스트마크 아메리카Postmark America라는 이름을 단 새로운 제품 도한 판매 중입니다. 이 제품들에는 과거 역마 우편배달부가 사용하던 2.95달러짜리 모자, ‘배달 완료’라는 프린트된 새겨진 이동용 티셔츠, 우편항공기 조종사의 345달러짜리 가죽 재킷 등이 포함됩니다. 체신부는 이런 우체국 브랜드 상품 판매가 워너브라더스나 월트디즈니 같은 기업을 모델로 삼은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통치와 상업주의가 지나치게 뒤섞이는 현상이 우려의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면 정부 관리들은 대중문화와 광고, 오락 등을 이용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를 높이려고 애쓰기 마련인데, 문제는 그런 위장된 권위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샌델은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 많은 돈을 쓰는 국가기관들은 자신들의 본래 임무를 곧잘 망각한다고 우려합니다. 체신부 장관 마빈 러니언Marvin Runyon은 정부기관에 상업주의가 도입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시장중심의 그리고 고객 친화적인 정부 조직이 되어 국민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샌델은 국민이 고객이 아니라면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국민에게 원하는 걸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바르게 시행되는 정치란 국민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바른지 판단한 후 그 욕구를 수정하도록 이끈다고 말합니다. 고객과 달리 국민은 때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들의 욕구를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샌델은 그것이 바로 정치와 상업의 차이점이며 애국심과 브랜드 충성도의 차이라고 지적합니다.
샌델은 정부가 만화 캐릭터와 최신 스타일의 광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정부 지지도를 높이는 데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공공기관이 갖는 권위와 사명의식을 해친다고 말합니다. 공공기관이 주어진 임무를 망각하면 시민들의 삶에 마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장의 힘과 상업적 압력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