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의 <광야의 세례 요한(바쿠스)>: 전통으로부터의 단절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세례 요한(바쿠스)>은 밀라노에서 바쿠스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리려고 마음먹었던 것으로 이때 완성한 것입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가 1510년경 바레세의 무세오 델 사크로몬테에서 스케치한 것을 제자들이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데,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멜치, 마르코 오조네, 체사레 다 세스토, 베르나조네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요한 혹은 바쿠스의 얼굴은 모호한 모습으로 거의 여성적이며 누드로 묘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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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다 세스토의 <팔과 어깨, 그리고 인물에 대한 습작>, 39.5-23.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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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오조네의 <수염 난 남자 머리 습작>, 지름 22cm.
레오나르도는 예언이라는 개념에 흥미를 느꼈으며, 그의 그림에는 출생과 운명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는 포도주의 신과 자유를 느끼는 환희, 그리고 예언적 성자의 개념을 혼용했습니다. 주피터와 세멜레의 아들 바쿠스가 부활한 것과 요한이 예언한 구세주 역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겹쳐놓은 것입니다. 그는 고대와 기독교를 조화시키려고 했습니다. 피치노가 플라톤의 저서에서 그리스도의 개념을 찾은 것처럼 그도 고대에서 예언자의 개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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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광야의 세례 요한>, 1510-15년경, 패널에 유채, 69-57cm.
성자를 왼쪽 어깨에 표범가죽을 걸친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이교 신들에게서 볼 수 있는 남성이지미나,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면서 부대적인 부분과 일화는 최소화했으므로 특별히 읽을거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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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성 모자와 앤, 세례 요한을 위한 습작>의 부분
레오나르도는 <광야의 세례 요한>을 그릴 때 바쿠스의 요소를 인용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그릴 때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내던 남루한 차림의 예언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의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해 그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그런 성서적 기담에는 관심이 없었고 단지 자신의 작품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릴 때부터 특정한 몸짓에 의한 강렬함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거나 화면 밖 어느 곳을 향하도록 하는 방법을 종종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의 미소는 정신분석적 의미를 띄는 것으로 사뭇 자조적입니다. 이런 형식의 그림은 여태까지의 회화사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는 것으로 전통으로부터의 단절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