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가 느끼는 것으로부터 나아간다”
작품을 Daum'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가 느끼는 것으로부터 나아간다”고 적었는데 이는 감각, 즉 분별하고 판단하며 반응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게 됨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그는 이런 것들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며 이것으로 지난 시대의 불행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운동으로 건강해지듯 자신의 감각도 훈련시키면 관망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물의 형상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세부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오로지 한 부분에서 그 다음 부분으로 나아가면서 이해할 때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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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다섯 명의 크로테스크한 인물들>, 26-20.5cm.
272
레오나르도의 <다섯 캐리커처>, 18-12cm.
266
레오나르도의 <웃는 더벅머리 남자의 옆모습>, 6.6-5.5cm.
267
작가미상의 <그로테스크한 남자의 머리>, 14.2-8.5cm.
16세기 후반 레오나르도의 드로잉을 모사한 것으로 레오나르도의 드로잉이 규범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현존하는 드로잉들을 보면 자신이 말한 대로 레오나르도가 한 부분에 관해 깊이 연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굴의 각 부분을 세밀히 관찰하는 가운데 코의 경우 한 장의 종이에 곧은 코, 주먹코, 옴폭한 코, 돌출 코, 굽은 코, 보통 코, 사자코, 둥근 코, 뾰족 코 등 열 가지 다른 형상들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을 열두 가지 형상으로 습작하기도 했으며, 입술, 눈썹, 이마 등을 세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얼굴 전체에 대한 이해를 증폭시켰습니다. 그는 사람의 전신, 온갖 종류의 동·식물도 이런 식으로 관찰하면서 대상의 폭을 넓혀나갔습니다.
그는 알베르티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연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추려내는 그의 선택적 이론에는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에 내재하는 모든 것을 모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어떤 종류의 대상들은 모사에서 제외시키는 임의적인 한계 설정에 반대했습니다. 그의 논문을 보면 미에 대해 어떠한 차등도 두지 않았으며, 모든 자연물의 미에 관해 언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가와 시인 모두 “인체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묘사하지만, 추함이 아름다움과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각각 강렬하게 부상된다고 보았습니다. 대조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고, 아름다운 것보다는 개성적이고 특징을 지닌 것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대상을 실재처럼 개성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면 절대적인 조화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아도 된다고 보았습니다. 인물의 경우 다양성에 집착했습니다.
“사람은 뚱뚱하고 작은 체격이든, 크고 마른 체격이든, 또는 그 중간이든 비례가 잘 맞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물상들을 늘 한 가지 유형으로 그려놓음으로써 한 형제인 양 보이게 한다. 이는 심히 비난받을 일이다.”
다양성에 집착한 그의 개별적인 묘사는 당시 화가들의 규범이 되었으며, 수년 뒤 뒤러가 이런 식으로 각 부위에 대한 관찰에 집중했습니다. 뒤러는 격자가 그려진 유리를 사용하여 더욱 과학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런 장치를 사용하여 드로잉하는 걸 비난하면서 “그런 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장치 없이는 그릴 수 없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이런 나태는 정신을 파괴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장치 없는 가운데 대상을 드로잉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렇지만 드로잉이 바르게 그려졌는지 알기 위해서 장치를 사용하는 건 타당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드로잉하면 마음으로 대상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기억을 더듬어서 원근법에 맞게 그려라. 그렇게 그린 것이 대상을 보고 그린 것에 합당하지 않을 경우 어디에 실수가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레오나르도는 인간이 “자연의 모든 현상에 의한 형상들”을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가능한 한 익히고 기억한다면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새로운 대상과 씨름할 때 어려움이 덜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기억한 것들을 잠들기 전에 드로잉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화가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권했습니다. 이런 습관은 베로키오로부터 익힌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바사리는 베로키오가 드로잉에 탁월했음을 지적하면서, 베로키오가 인내를 갖고 드로잉을 했으며, 여인의 머리를 드로잉한 것들은 매우 우아했고 이것을 레오나르도가 평생 모방했다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