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화학은 숫자놀음이다
1910년을 전후해서 45년 동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행된 연구의 결과로, 원자의 정체가 인류사상 처음 밝혀졌습니다. 실제 사용된 방법은 하나의 원자를 향해 다른 원자들을 쏘아 충돌시켰을 때 ‘총알 원자들’이 어떻게 튕겨나가는가를 조사해, 표적 원자의 내부 구조를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원자의 외곽부는 전자의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자의 전하를 음전하로 부릅니다. 이 전자가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합니다. 원자의 저 깊숙한 내부, 전자구름 속 깊숙한 곳에는 핵이 숨어있습니다. 핵은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들과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들로 구성됩니다. 원자의 핵은 원자 전체의 경우 10만 분의 1 정도이지만, 원자의 질량이 거의 전적으로 이 조그마한 핵에 모여 있습니다. 전자는 그저 떠돌아다니는 솜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원자는 속이 텅 빈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녀석인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물질이란 것도 실은 속이 텅 빈 쭉정이인 것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총수는 대략 1028개이며, 관측 가능한 우주에 들어있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와 같은 소립자들의 총수는 대략 1080개가 되어 비교할 만합니다. 우주를 중성자들로 가득 채우려면 10128개가 필요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소립자들을 구성하는 더 근본적인 알갱이를 쿼크quark라고 부릅니다. 쿼크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핵보다 작은 세상의 모습을 일상의 언어로 기술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쿼크에 냄새와 색깔을 입혔습니다. 쿼크야말로 궁극의 기본 입자인지, 아니면 쿼크도 더 근본적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자연에는 화학적 성질이 뚜렷하게 다른 원소가 92종이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까지 지구의 모든 물질이 이 92종 원소의 조합으로 이뤄졌다고 믿었습니다. 가장 간단한 수소가 1번, 가장 복잡한 우라늄이 92번입니다. 그 밖의 원소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한 것들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하프늄, 에르븀, 디스프로슘, 프라세오디뮴 따위는 일상에서 맞닥뜨릴 기회가 거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철은 지구에 풍부하지만, 우리 귀에 아주 생소한 이트륨은 지구에 거의 없습니다.
모든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세 가지 소립자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중성자가 발견된 것도 1932년입니다. 중성자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전하를 띠지 않습니다. 양성자와 전자는 똑같은 크기의 양전하와 음전하를 갖습니다. 부호가 다른 전하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이 원자를 원자로 남아있게 하는 요인입니다. 원자는 전체적으로 중성이므로 핵에 있는 양성자의 개수와 전자구름을 이루는 전자의 개수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한 원자의 화학적 성질은 전자의 개수에 따라 좌우되는데, 원자 번호가 바로 양성자나 전자의 개수이므로 원자 번호에서 그 원자의 화학적 특성을 쉽게 점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화학을 숫자놀음이라고 말합니다. 전자와 양성자를 하나씩 갖고 있으면 수소, 둘씩이면 헬륨, 셋씩이면 리튬, 넷씩이면 베릴륨, 다섯씩이면 보론, 여섯씩이면 탄소, 일곱씩이면 질소, 여덟씩이면 산소, 이런 식으로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원자 번호 92의 우라늄은 그러니까 양성자와 전자를 각각 아흔두 개씩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호가 같은 전하들 사이에는 척력이 작용합니다. 전자는 전자를 밀치고, 양성자는 양성자를 배척합니다. 원자핵에 전하를 띤 입자라고는 양성자뿐인데, 핵이 와해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핵에는 또 다른 종류의 힘, 즉 핵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핵력의 정체는 중력도, 전자기력도 아닙니다. 핵력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하므로 세이건은 갈고리에 비유합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아주 가까이 있을 때 핵력이라는 이름의 갈고리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맵니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갈고리보다 멀면 갈고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중성자는 전하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척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핵력을 발동하여 핵을 전체적으로 붙잡아 묶는 풀의 역할을 합니다.
자연 원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주 존재하는 물질의 99%가 수소와 헬륨입니다. 그런데 헬륨은 지구에서 발견되기 전에 태양에서 먼저 검출되었습니다. 간단한 핵에서 복잡한 핵을 만들려면 양성자와 중성자를 첨가하면 됩니다. 이때 방해의 요인인 전기적 척력을 어떻게 적절히 상쇄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역시 그 임무는 핵력의 몫입니다. 핵력의 발동은 핵자들이 매우 가까이 접근해야 가능한데, 극도로 고온인 상황에서는 핵자들의 근거리 접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온도가 대략 1000만 도 이상의 상황에서는 핵자들이 전기적 척력이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게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온의 조건은 별의 중심부에서 쉽게 구현됩니다.
태양의 상층부 대기의 온도는 절대 온도로 6000도 정도입니다. 우리에게 철저하게 숨겨진 태양의 저 깊숙한 내부의 온도는 1570만 도에 이릅니다. 이렇게 뜨거운 조건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빛이 만들어집니다.
기체와 티끌로 구성된 성간 구름이 중력 수축하여 별들과 그 별들에 딸린 행성들을 만듭니다. 성간운의 중력 수축이란 자체 중력 때문에 겪게 되는 성간운의 전반적인 낙하 운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체 분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므로, 수축이 진행됨에 따라 내부의 온도는 상승하게 마련입니다. 드디어 내부의 온도가 1000만 도에 이르면 수소 원자 네 개가 만나서 헬륨 핵이 하나 만들어지는 핵융합 반응이 전개됩니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감마선의 빛, 즉 감마선 광자로 나타납니다. 감마선 광자는 주위 물질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방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태양의 표면을 향해 이동합니다. 흡수가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씩 잃게 되므로 높은 에너지의 감마선 광자는 점점 낮은 에너지의 광자로 변신해서 드디어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帶域(대역)의 광자가 됩니다. 중심핵에서 출발한 광자가 표면층에 도착하는 데 대략 100만 년이 걸립니다. 핵융합 반응에서 최초로 태어난 광자가 가시광선의 광자로 표면을 빠져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새로 탄생한 별을 보게 됩니다. 핵융합 반응의 개시와 더불어 그때까지 진행되던 중력 수축이 멈춥니다. 별의 외곽층을 차지하는 질량의 무게를 중심핵 부분의 고온과 고압이 지탱하여, 별 전체가 안정된 상태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태양은 지금까지 대략 50억 년 동안 이와 같은 평형 상태를 유지해왔습니다. 태양은 표면에서 방출되는 광도를 충당하느라 중심핵에서 매초 4억 톤의 수소를 헬륨으로 변환시킵니다. 별 하나하나가 빛을 낼 수 있는 건 그 별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