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가 쓴 밀라노 최고 권력자에게 쓴 편지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 갈 때 밀라노 최고 권력자에게 쓴 편지를 소지하고 갔습니다. 이 긴 편지는 문장력과 철자에 자신 없었던 그가 친구에게 부탁해서 쓴 것으로 11개 혹은 12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탁월하신 군주님, 소위 무기 발명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행적들을 충분히 검토한 결과 그들이 발명한 무기들은 보통 사용되는 것들과 다름없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저는 어느 누구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 가운데 아래와 같은 간략하게 설명한 항목들을 실행하기 위해 군주님께 저의 비밀을 밝히고 싶습니다.


1. 제가 고안한 다리는 가볍지만 매우 강하며 적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 혹은 적을 추격할 때 운반이 아주 수월합니다. 제게는 그 밖의 고안품들도 있는데, 튼튼하며 공격뿐 아니라 화력에도 방어가 되며 설치와 철수가 용이한 것들입니다. 저는 또 적의 무기들을 태워버리고 부숴버리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2. 저는 포위되었을 경우 해자moat(도시나 성곽 둘레의 외호)의 물을 말리는 방법과 무수한 다리, 길 포장, 사다리 올리기, 그리고 이런 유형의 기계들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3. 품목. 제방이 높고 장소나 지역이 험준해 폭격으로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라도 파괴시키는 방법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4. 제게는 매우 실용적이고 쉽게 운반할 수 있으며 돌들을 비처럼 쏟아지게 만드는 박격포 모델이 있습니다. 이 박격포에서 나오는 연기는 적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교란시키며 공포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5. 저는 전투가 바다에서 벌어질 경우 공격과 방어에 매우 유용한 기구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 배들은 매우 강한 대포, 발연, 화약조차 물리칠 수 있습니다.


6. 품목. 저는 소리를 내지 않고 통로와 비밀 지하터널을 파며, 해자나 강 아래라도 통로와 터널을 파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7. 품목. 저는 덮개가 있는 수송 수단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은 안전하고 약점이 없으며 적의 포대를 관통하여 가장 강력한 군대를 섬멸할 수 있습니다. 보병대는 장애에 봉착하지 않고 손상을 받지 않는 가운데 이 수송 수단을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8. 품목. 필요하다면 저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들과는 다른, 보기 좋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커다란 사석포, 박격포, 불덩이를 투사하는 기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9. 사석포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저는 투석기, 대형 투석기, 트라보키trabocchi 외에도 보통 사용하지 않는 놀라운 효과를 내는 기구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공격·방어용의 다양한 기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10. 평화로운 시기에는 누구라도 건축에 있어, 공용이나 개인용 건물 디자인에 있어, 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을 이동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11. 품목. 저는 대리석, 청동, 테라코타를 사용해 조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인물이라도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습니다.


12. 게다가 저는 스포르차의 빛나는 가문과 군주님의 어버이에 대한 자랑스러운 기억을 청동의 말로 불후의 영광과 영원한 영예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품목들을 제작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불가능하며 비현실적이겠지만 저는 군주님의 정원이나 군주님이 만족하실 만한 곳이라면 제작할 수 있음을 겸허한 자세로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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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요새의 안뜰에 일렬로 배치된 모르타르를 쏘는 장치>, 32.6-47.6cm.


레오나르도가 이 편지를 밀라노 최고 권력자에게 보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에 관심이 많은 그가 과학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무기와 공격과 방어를 겸하는 기구들을 무수히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군사용 기구를 설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노트북을 보면 이런 용도에 적합한 손에 들고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기구, 탄도, 화염투석기 등은 물론 가공할 파괴력의 기계와 요새화 등 이와 관련된 수없이 많은 드로잉을 볼 수 있습니다. 공작에게 보내는 편지에 언급한 품목들을 그는 모두 디자인할 수 있었습니다. 피렌체는 로마, 나폴리, 그 외의 나라들에 대한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했으므로 요새와 무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마치 군부의 공학가처럼 이런 연구에 열중했습니다. 다양한 악기를 제작하듯 그는 조립하고 기계화하며 체계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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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병거>, 1485년경, 21-29.2cm.


레오나르도가 디자인한 군대용 북을 보면 톱니바퀴에 다섯 개의 막대기를 달아 바퀴가 움직일 때 자동적으로 리듬 있는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그는 총 사격발사장치를 고안했는데, 바퀴에 달린 오르간 파이프 세트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열한 개의 포신이 장착되어 기관총처럼 연발로 발사할 수 있으며 일련의 원통들이 부착되어 있어 원하는 곳으로 쉽게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또 그는 사다리로 성벽을 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한 번에 사다리 세 개 혹은 네 개를 밀쳐내는 기구도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예닐곱 개의 포신을 한 원통에 장착시키기도 했는데, 이 역시 기관총의 전신입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갔을 무렵, 이탈리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터키족이 아풀리아를 점령했고, 로마는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었으며, 베네치아는 페라라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는 계속해서 용병들을 고용하여 아르젠타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에스테의 후작을 괴롭혔으며 롬바르디아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밀라노는 두 공화국 총독들 사이에서 외교적 중재를 벌이다가 이제 무장을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레오나르도는 공화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술가보다는 군사전문 공학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군사적 상황을 맞아 그가 새로운 방향, 즉 군사용 무기와 기구 디자인 전문가로 출세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수산업은 오랫동안 밀라노의 주력 산업이었으므로 그가 밀라노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고 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밀라노의 거리에는 수십 개의 무기판매점들이 있어 검을 제작하거나 장식했고, 창을 제작했으며, 도끼창, 투구, 방패 등을 제작했고 이것들은 국외로도 수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전통 무기들로 이탈리아는 북쪽의 이웃나라들과 터키에 비하면 무기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디자인한 것들이 생산되었더라면 무기 산업은 한층 활기를 띠었을 것이며, 그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225

레오나르도의 <대포공장>, 24.7-18.3cm.


221

레오나르도의 <무기에 대한 연구>, 20.9-30.8cm.


224

레오나르도의 <탄도에 관한 연구>, 20-28cm.


콰트로첸토(15세기)의 피렌체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밀라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변화를 겪었으므로 레오나르도가 체류했을 때의 밀라노를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밀라노는 야만인 켈트족에 의해 발견된 이후 카르타고 사람들이 이 도시를 침범했고, 로마가 점령한 적이 있으며, 고트족이 강탈했고, 6세기에 이탈리아를 정복한 게르만족 롬바르드가 이어서 강탈하면서 주변 지역에 롬바르디아라는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롬바르디아의 주도인 밀라노는 로마와 알프스 북쪽 나라들 사이에서 경제적 교량 역할을 했습니다. 비스콘티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고 130년 동안 통치하면서 도시는 확장되고 발전하여 레오나르도 생전에는 이탈리아의 가장 큰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으며, 유럽에서도 막강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콰트로첸토 양식의 현대식 건물들을 보았을 텐데 그것들은 피렌체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것들로 필라레테Filarete(1400년경-1469년경)의 오스페달레 마지오레, 미켈로조의 메디치 은행 등입니다. 필라레테는 조각가, 건축가이면서 예술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본명은 안토니오 아베를리노Antonio Averlino인데 그리스어로 ‘미덕을 사랑하는 사람 lover of virtue’이란 뜻의 필라레테란 별명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는 기베르티로부터 수학한 것 같으며, 주요 작품인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청동문(1433-45)은 피렌체에 있는 기베르티의 세례당 문과 유사하여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물을 훔친 혐의로 로마에서 쫓겨난 그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활동했으며, 1450년 밀라노에 안주했습니다. 밀라노에서 그는 주로 건축가로 활약했고, 1457년에 오스페달레 마지오레를 건립하기 시작했으나 완공된 건 18세기에 와서였습니다. 이 건축물은 르네상스 양식을 롬바르디아에 소개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461-64년에 쓴 『건축에 관한 논문』에는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계도 포함되엇으며, 자신의 후원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이름을 따서 새 도시명을 스포르친다Sforzinda로 불렀습니다.

밀라노에는 현대식 건물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궁전이나 교회는 로마네스크 혹은 고딕 양식이었습니다. 스탕달이 밀라노의 거리가 유럽에서 가장 대화하기 좋은 장소라고 지적한 것처럼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17년 혹은 18년 동안 지낸 걸 보면, 그 역시 도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밀라노에 온 레오나르도에 관해 바사리는 적었습니다. “왕자는 레오나르도의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그 재능에 매우 탄복하여 레오나르도에게 훗날 황제에게 보낼 제단화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려줄 것을 간절히 청했다.” 하지만 바사리가 언급한 <그리스도의 탄생>은 현존하지 않으며,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도착하고 곧 궁정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청동 기마상 제작을 위임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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