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이 전기력과 자기력을 하나의 힘으로 통합하다


영국의 물리학자이며 화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1791-1867)의 생각을 발전시켜 전기와 빛 사이의 신비스럽고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는 수학적 이론을 개발한 사람은 1860년대에 활동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태생의 물리학자이며 수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1831-79)입니다. 전기와 자기를 단일한 힘으로 통합한 그의 성과는 뉴턴의 역학과 함께 과학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의 수학적 이론 덕분에 전기력과 자기력을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이라는 동일한 물리적 존재의 두 가지 표현으로 기술하는 일련의 방정식들이 생겨났습니다. 맥스웰이 전기력과 자기력을 하나의 힘으로 통합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전자기장이 파동의 형태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 파동의 속도는 그의 방정식들에 등장하는 어떤 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는 몇 년 전에 실험에 의해서 측정된 데이터를 토대로 그 수를 계산했습니다. 전자기 파동의 속도를 계산해보니 놀랍게도 그 결과는 당시에 실험들을 통해 1% 이내의 오차로 알려진 빛의 속도와 일치했습니다. 빛이 전자기파라는 걸 그가 발견한 것입니다.

맥스웰은 컬러사진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1861년에 삼원색의 혼합으로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응용해 컬러사진을 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맥스웰을 20세기 물리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9세기 과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아인슈타인이나 아이작 뉴턴에 견주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도에 BBC는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 100명을 선정하면서 아인슈타인, 뉴턴에 이어 맥스웰을 3위로 꼽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업적은 뉴턴 이후 가장 심원하고 풍성한 물리학의 성과”라고 평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실 벽에 뉴턴과 마이클 패러데이의 초상화와 함께 맥스웰의 초상화를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맥스웰이 발견한 전기장과 자기장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맥스웰 방정식Maxwell's equations’이라고 합니다. 맥스웰 방정식은 상업적으로도 가장 중요한데, 가전제품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온갖 전기기계의 작동을 지배할 뿐 아니라, 마이크로파, 전파, 적외선, X선 등과 같은 빛 이외의 다른 전자기파들을 기술합니다. 이 전자기파들은 한 가지 측면, 오직 파장에서만 가시광선이 다릅니다. 전파는 파장이 1m 이상인 반면, 가시광선의 파장은 십만 분의 몇 미터, X선의 파장은 1억 분의 1m 미만입니다. 태양은 모든 파장을 복사하며, 우리의 눈에 보이는 파장들을 가장 강하게 복사합니다. 호킹은 우리가 다른 행성에서 오는 존재들과 마주칠 경우, 그들은 그들의 태양이 가장 강하게 복사하는 파장들을 보는 능력을 가졌을 거라고 말합니다.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기파는 초속 약 30만 km, 즉 사속 약 11억 km로 나아갑니다. 호킹은 속도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날아가는 제트 여객기의 객실 통로에서 찻잔을 들고 걸을 경우 우리는 우리의 속도가 시속 3km라고 말하겠지만, 지상에 있는 관찰자는 여객기의 속도가 시속 917km이기 때문에 우리가 시속 920km로 움직인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호킹은 태양의 표면에 있는 관찰자의 경우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므로 그 관찰자는 우리가 초속 29km로 움직인다고 말할 거라고 합니다. 호킹은 동일한 현상의 속도를 다양한 기준 틀에서 다양하게 측정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호킹은 맥스웰 방정식에서 도출된 빛의 속도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은 속도이냐고 물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호킹은 맥스웰 방정식에서 도출된 빛의 속도가 우주 전체에서 타당하므로 지구를 기준으로 측정한 속도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맥스웰 방정식에서 도출된 빛의 속도는 그때까지 탐지되지 않은 우주에 충만한 발광 에테르luminiferous ether, 혹은 줄여서 에테르라는 매질medium을 기준으로 삼은 속도라는 겁니다. 에테르는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상 근처를 벗어난 우주 전체에 가득 차 있다고 믿은 물질의 명칭입니다. 소리가 퍼져나가는 매질이 공기인 것처럼, 전자기파가 퍼져나가는 매질은 그 가설적인 에테르라고 사람들은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절대적인 정지를 말할 수 있고 따라서 절대적인 운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적 이유로 에테르의 존재가 가정되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에테르를 연구할 방법이나 최소한 그 존재를 입증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맥스웰 자신도 그러한 과학자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초음속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이 그 비행기가 뒤에 퍼뜨리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테르 속에서 충분히 빠르게 이동하는 여행자는 광파light wave를 앞지를 수도 있습니다. 맥스웰은 이런 생각에 기초해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때 에테르 속에서 운동할 것이라고. 또한 지구는 1월에 운동하는 방향과 4월이나 7월에 운동하는 방향이 다르므로, 1년 중의 다양한 시기에 지구에서 광속을 측정하면 그 결과 사이에 미세한 차이가 생겨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맥스웰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려고 했지만, 그의 실험이 유효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왕립학회 회보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의 편집자는 맥스웰이 출판을 포기하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1879년 고통스러운 위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48세의 맥스웰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그 제안을 언급했습니다. 그의 편지는 맥스웰이 죽은 후 학술지 『네이처 Nature』에 게재되었고, 앨버트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1852-1931)이라는 독일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같은 사람들이 그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맥스웰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은 마이컬슨과 에드워드 몰리Edward Morley(1838-1923)는 1887년에 지구가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매우 섬세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서로 직각을 이룬 두 방향에서 다가오는 광속을 비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빛이 에테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고정된 값이라면, 지구가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향에서 다가오는 광속들을 측정하면 조금씩 다른 값들이 나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마이컬슨과 몰리가 얻은 측정값들은 기대한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마이컬슨과 몰리가 얻은 실험 결과는 전자기파가 에테르 속에서 퍼져나간다는 모형과 확실히 충돌했으며 따라서 에테르 모형을 퇴출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이컬슨의 목적은 빛이 에테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었지, 에테르 가설이 옳거나 그름을 증명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의 발견은 그를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아일랜드의 수리 물리학자이며 공학자 윌리엄 톰슨 경Sir William Thomson(1824-1907, 켈빈 남작Baron Kelvin, 작위를 받을 때 그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교 앞에 흐르는 켈빈 강에서 이름을 따 자신의 이름으로 했습니다)은 1884년에 심지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학에서 우리가 그 존재를 확신하는 유일한 실체.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발광 에테르의 실재성과 실체성이다.

호킹은 과학자들이 흔히 꼼수와 미봉책을 써서 모형을 살리려고 애쓴다면서, 당시 과학자들도 에테르 모형을 살리려고 노력했음을 지적합니다. 에테르의 개념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거의 20년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하던 무명의 젊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고라목할 만한 논문 한 편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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