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아르장퇴유 Argenteuil>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네는 1874년에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그리면서 ‘물의 라파엘로’란 별명을 가진 모네와 경쟁을 벌이게 되지만, 이미 사람들이 경멸의 뜻으로 인상주의라고 칭한 모네의 화풍을 실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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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아르장퇴유 Argenteuil>, 1874, 유화, 149-131cm.
1874년 여름 마네가 아르장퇴유로 모네를 방문했을 때 그린 것들 중 하나입니다. 모네가 센 강변의 풍경화에 몰두하는 데 자극을 받은 마네도 빛의 효과를 나타내는 강변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마네는 이듬해에 이 작품을 살롱에 출품했는데, 사람들은 강물을 너무 푸르게 그리고 우너근법을 무시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디고색의 겅물이 벽처럼 평편하고 ... 아르장퇴유가 펄프와도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네를 옹호한 평론가들은 수면의 강렬한 푸름은 잘못된 색이 아니라 여름의 빛으로 조화시킨 것이며, 또 아르장퇴유의 현대 생활상을 묘사하기 위해 정직하게 시도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네의 <아르장퇴유>에서 모네의 화풍이 좀 더 분명히 나타납니다. 절반은 야외에서 그린 이 작품은 1875년 살롱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만 출품했습니다. 작품에는 뱃사람이 여인 가까이 다가앉아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 같으며, 여인은 사내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채 건성으로 사내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마네의 작품에서 여인들은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장면은 물론 마네의 연출에 의한 것입니다. 마네는 두 모델을 바짝 관람자 앞으로 당기고 배경에는 원근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넉넉하게 구성했지만, 강물을 지나치게 파란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원근감이 많이 감소되고 말았습니다. <아르장퇴유>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자연주의 화풍을 확인시켜주었으며, 이 점이 새로운 화법으로 바람직함을 시위했습니다. 『르 주르날 아뮈장 Le Journal Amusant』에는 만화와 함께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저런, 저것이 무엇이람?”
“그건 마네와 그의 아내지.”
“그들이 무엇을 하는 거죠?”
“배 위에 앉아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파란 벽은 무엇이랍니까?”
“그건 센 강입니다.”
“정말이에요?”
“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아르장퇴유>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살롱이 폐막하던 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마네의 배에 탄 한 쌍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 섭섭할 이유가 없을 거야. 거의 두 달 동안 사람들이 그들의 면전에서 킬킬거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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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보트놀이 Boating>, 1874, 유화, 96-130cm.
이 작품 또한 마네가 1874년 여름 모네를 방문했을 대에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다른 그림들과 달리 붓질을 가늘게 하지 않고 색채도 영롱하게 하기보다는 바깥 공기의 신선함을 색조로 나타내려고 했음을 봅니다. 파란색과 흰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강조해 아르장퇴유의 뜨거운 공기보다는 서늘함을 나타내려고 한 듯합니다. 구성에 있어서는 배의 뒷부분만 남기고 대담하게 절단했으며, 흰옷의 남자와 오른쪽의 돛 일부 그리고 배에 기대어 앉은 여인으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마네는 1874년 여름 자신의 별장 근처 센 강에 보트를 띄우고 남녀 한 쌍을 모델로 <보트놀이>를 그렸습니다. 강렬한 물빛의 효과는 모네의 영향이며, 수평선을 생략한 과감한 인물 구성은 일본 판화의 영향입니다. 자크 에밀 블랑슈는 모델이 모파상의 절친한 친구 바롱 바르비에라고 했습니다. 모자를 쓴 여인은 카미유인 것 같은데, 마네가 그해 그린 <아르장퇴유의 센 강둑>에서의 카미유가 이 여인과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네는 두 모델을 그림 앞쪽에 구성했으므로 배의 일부만 보일 뿐이며, 마네의 눈 위치가 모델의 머리 위였으므로 관람자는 배의 내부를 볼 수 있습니다. 눈의 위치가 높기 때문에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강물만 모델들의 배경이 되어 커다란 여백으로 나타났으며, 파란색의 강물이 관람자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며, 강물 외에는 어느 것도 배경에 없으므로 원근감보다는 이차원적인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이 여기서 부분적으로 나타났는데, 마네는 카미유의 드레스를 짧은 붓놀림으로 칠했고, 이런 기교는 회화적 이유에서였으며, 빛의 역할을 관찰하여 그렇게 칠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뒤늦게 1879년 살롱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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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모네의 초상 Portrait of Monet>, 1875, 유화, 85-60.5cm.
마네의 <보트 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센 강둑>, <아르장퇴유>, <보트놀이>는 인상주의의 황금기에 모네와의 친분을 말해주는 작품들입니다. 르누아르도 아르장퇴유에서 모네와 함께 작업하면서 <모네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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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나무 다리 Le Pont de Bois>, 유화, 54-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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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철로 다리 Le Pont du Chemin de Fer, Argenteuil>, 1873, 유화, 58.2-97.2cm.
철로가 생기면서 아르장퇴유의 쾌적한 환경도 개방되었습니다. 모네는 철로와 다리에 관심이 많았으며, 1872년에는 <나무다리>를 그렸습니다. 그는 <아르장퇴유의 철로 다리>란 제목으로 그리면서 못생긴 철로다리를 평범하게 구성하면서 고전주의 방법으로 검정이나 어두운 브라운색을 피하고 변조된 색들을 사용해 빛과 색의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낭만주의 화법이 발견되었고, 쿠르베와 마네가 사용한 짧은 붓놀림이 발견됩니다. 붓놀림이 짧아진다는 건 그만큼 대상을 묘사하는 데 빛에 대한 관찰이 작용함을 시사합니다. 들라크루아로부터 시작된 빛의 신비한 역할에 대한 관심이 모네의 그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인상주의 화법은 회화가 시각적 사실주의의 최고 수준임을 고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