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아르장퇴유에 정착하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모네는 1871년 말 파리로 돌아왔으며, 프러시아 군대가 파리를 포위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리는 가운데 겨울을 나야 했습니다. 보불전쟁은 나폴레옹의 대단한 실패작으로 결국 황제의 실정이 온 프랑스 국민에게 가난을 안겨주었습니다. 더구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나라 전체가 얼어붙은 느낌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제는 말이 아니었으며, 시슬레 아버지의 사업은 파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유한 아마추어 화가였던 시슬레는 이제 가난한 직업 화가로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림을 헐값에라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시슬레는 1878년에 30점의 그림을 한 점에 백 프랑에 판 적도 있었습니다.
모네는 파리의 호텔에 한동안 묵다가 아르장퇴유에 집을 세 얻었습니다. 아르장퇴유는 센 강가의 작은 동네로 파리에서 8km 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1871년 12월 21일 피사로에게 “우리는 지금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라고 쓴 편지에는 주소와 함께 ‘아르장퇴유, 생드니 항 구빈원 근처 오브리 저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저택의 집세는 한 해 천 프랑으로 비싼 편이었습니다. 이 집을 마네가 모네에게 권했던 것 같은데, 마네는 이 고장에 관해 잘 알고 있었으며 강 건너에 별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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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강변로 The Riverside Walk at Argenteuil>, 1872, 유화, 50.5-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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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내만 The Basin at Argenteuil>, 1872,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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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요트 레이스 Regatta at Argenteuil>, 1872년경,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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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가을 Autumn at Argenteuil>, 1873, 유화, 56-75cm.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네 또한 이곳에서 많은 그림을 그려 1870년대를 ‘아르장퇴유의 시대’라고 부를 만합니다. 태양의 변화와 이에 다른 물의 반영이 순수한 색의 빛과 어우러져 모네의 분할된 붓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네는 보트를 타고 센 강을 오르내리며 풍경 가까이에서 빛에 의한 물의 반영을 영롱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아르장퇴유의 가을을 묘사하면서 하늘과 물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집들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아르장퇴유는 1850년대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여 파리로부터 철로가 연결되었고 도심으로 가는 데 15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요트 레이스로 유명한 아르장퇴유에서는 국제 요트 레이스가 벌어지곤 했으며, 파리 시민에게 보트놀이 명소로 알려졌지만 공장들이 모여 있는 산업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모네가 그린 <아르장퇴유의 강변로>에 이 고장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데, 보트와 별장이 보이고 또한 공장의 굴뚝도 보입니다. 야외에서 그린 <아르장퇴유의 내만>, <아르장퇴유의 요트 레이스>, <아르장퇴유의 가을>에서 보듯 모네는 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르장퇴유의 요트 레이스>는 친구 화가들을 경악케 했는데, 완성된 그림이라기보다는 물감으로 스케치하듯 대충 그린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는 대상을 분명하게 해줄 외곽선도 형태에 대한 묘사도 없습니다. 요트에 탄 사람의 모습은 단번의 붓질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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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에서 장과 보모와 함께 한 카미유 Camille au Jardin, avec Jean et sa Bonne>, 1873, 유화, 59-7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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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 벤치에 앉아 있는 모네 부인 Le Banc (Madame Monet on a Garden Bench)>, 1873, 유화, 60-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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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Poppy Field, Argenteuil>, 1874,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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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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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 모네 부인 카미유와 아들 La Promenade. La Femme a l'Ombrelle>, 1875, 유화, 100-8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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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정원에서 파라솔을 든 여인 La Femme a l'Ombrelle au Jardin d'Argenteuil>, 1875, 유화, 75-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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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꽃을 따는 여인 Woman Gathering Flowers>, 1872년경, 유화, 65.5-5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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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독서하는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Reading>, 1872, 유화, 61-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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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정원에서 작업하는 모네 Mpnet Working in His Garden>, 1873, 유화, 50-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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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정원에서의 파라솔을 든 여인 Woman with a Parasol in the Garden>, 1873, 유화, 54-65cm.
모네는 집에 있는 날이면 정원에서 카미유와 장을 모델로 풍경 속의 인물 표현법을 연구했습니다. <오찬>, <정원에서 장과 보모와 함께 한 카미유>, <정원 벤치에 앉아 있는 모네 부인>,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파라솔을 든 여인, 모네 부인 카미유와 아들>, <아르장퇴유의 정원에서 파라솔을 든 여인> 등에서 모네 가정의 화목한 한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찬>은 1876년에 개최된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장식화>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르누아르도 꽃밭을 배경으로 인물을 그렸으며, 모네의 그림과 유사한 터치를 볼 수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모네가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과 카미유와 장을 모델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커다란 결실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 해에 50점 이상 그렸으며, 이는 전에 없던 대량생산이었습니다. 38점이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것들로 그곳을 그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가늠케 합니다. 그는 르아브르와 루앙으로 가서 그리기도 했는데, 루앙에는 형 레옹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장부 기록에 의하면 1점은 형 레옹에게, 또 1점은 마네에게 주었으며, 5점은 딜러 루이 라투세란에게 팔았고, 뒤랑-뤼엘에게는 12,100프랑에 29점을 팔았습니다. 그해 모네의 수입이 2만 4천 프랑이었으므로 뒤랑-뤼엘의 비중이 절반에 이릅니다. 이듬해 그의 그림 값이 두 배로 껑충 뛰었습니다. 주요 구매자인 뒤랑-뤼엘이 정기적으로 구입했으며, 은행가 형제 알베르와 앙리 에크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마네를 만났던 테오도르 뒤레가 그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밖에도 아르장퇴유의 의사 조르주 드 벨리오와 오페라 가수 장 밥티스트 포르 그리고 귀스타브 카이유보트가 구입했습니다.
카이유보트는 재능 있는 화가로 아르장퇴유에 와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1873년 스물네 살의 카이유보트는 법대를 그만두고 아카데미 보자르에 입학하여 레옹 보나로부터 회화를 수학했습니다.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기면서 모네의 그림을 수집해 모네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모네는 작품이 잘 팔리자 더 비싼 가격으로 흥정하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