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런던으로의 도피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보불전쟁이 발발해 전선으로 징집되어 나간 모네의 오랜 친구 바지유가 11월 18일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시슬레는 영국인이었으므로 징집에서 제외되었고, 르누아르와 드가는 포병부대에 배치되었지만 무사했는데, 바지유만 운이 나쁘게도 전사자들 중에 포함되었습니다.
징집을 피해 배를 타고 런던으로 달아난 모네는 카미유, 장과 그곳에서 합류했습니다. 모네가 런던에 머문 기간은 9개월이었습니다. 런던에서 그는 피신해 온 프랑스인들을 만났는데, 그들 가운데 도비니와 피사로가 있었습니다. 도비니는 자신의 딜러 폴 뒤랑-뤼엘에게 모네를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훗날 우리들 중 가장 대성할 사람이오. 그의 작품을 사도록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모네와 뒤랑-뤼엘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뒤랑-뤼엘은 모네를 만난 얼마 후 뉴 본드 스트리트에 화랑을 개업하고 모네의 그림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부터 모네의 그림들을 다량으로 구매하는 중요한 딜러가 되었습니다. 뒤랑-뤼엘의 아버지는 이미 파리에서 그림 중개업을 한 적이 있으며, 뒤랑-뤼엘은 프랑스 근래 예술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고, 후에 인상주의 화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도비니는 1859년 모네에게 화가에 대한 꿈을 심어준 화가였습니다. 훗날 85세의 모네가 친구 에티엔 모로 넬라통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비니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는데, 도비니가 그의 인생에서 차지한 비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들은 적이 있겠지만 난 도비니 선생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혁명정부 시절 런던에서 내가 그분을 뵈었을 때 난 몹시 궁색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의 템스 강 그림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면서 뒤랑-뤼엘을 소개해 주었으며, 그분 덕택에 나와 몇몇 친구가 아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결코 망각할 수 없는 도움이었소. 그 후에도 그분이 나를 감동시킨 일이 발생했습니다. 도비니 선생이 뒤랑-뤼엘 화랑에 있던 나의 홀랜드 풍경화 한 점을 구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비니 선생의 신의를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공식 살롱에서 나와 내 친구들의 작품을 부당하게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분이 심사위원 자리를 박차고 물러난 일이랍니다.”(1925. 1. 14)
뒤랑-뤼엘은 모네를 카미유 피사로에게 소개했는데 피사로는 그때 런던 남쪽에서 친지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모네와 피사로는 로열 아카데미에 그림을 출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망했습니다. 두 사람은 1870년 12월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했고, 사우스 켄싱턴 뮤지엄에서 컨스터블과 터너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네는 사우스 켄싱턴 뮤지엄에서의 국제전에 두 점을 출품했지만 팔리지 않아 실망했습니다. 뒤랑-뤼엘이 경제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이국에서 모네의 생활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뒤랑-뤼엘이 굶어 죽을 번한 나와 몇몇 친구를 살려냈다”고 훗날 모네가 술회했습니다.
188
모네의 <템스 강과 국회의사당 The Thames and the Houses of Parliament>, 1870-71, 유화
모네는 템스 강 풍경을 3점 그렸는데 <템스 강과 국회의사당>은 안개 낀 장면을 그린 첫 작품입니다. 그는 하늘과 강물을 회색·노란색·핑크색의 매우 섬세한 색조로 표현하면서 국회의사당을 실루엣으로 처리했습니다. 새로 건립된 웨스트민스터 다리가 보이고 왼쪽에 빅토리아 제방과 성 도마 병원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이것은 그가 1872년에 그린 스케치와도 같은 그림 <인상, 일출>에 비하면 완성된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휘슬러도 템스 강을 배경으로 <파란색과 초록색의 야경: 첼시>를 그렸습니다.
190
모네의 <녹색 공원 Green Park>, 1870-71, 유화, 34-72cm.
모네는 징집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을 때 런던의 풍경을 그리면서 소일했습니다.
190-1
모네의 <하이드 파크 Hyde Park>, 1871, 유화
모네가 런던에서 그린 것들 중에 <녹색 공원>은 구도를 가로로 길게 하고, 인물들을 스케치하듯 작고 검게 처리함으로써 녹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런던 공원의 특징을 묘사했습니다. <하이드 파크>에서는 멀리에 하이드 공원 모퉁이와 헤이마켓 사이의 번화가 피카딜리가 보이지만 실루엣으로 어렴풋하게 보일 뿐입니다. 빅토리안 회화에는 런던의 공원 풍경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모네의 이 그림은 영국인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191
모네의 <잔담 Zaandam>, 1871, 유화
186-1
모네의 <잔담의 항구 The Port of Zaandam>, 1871, 유화, 47-74cm.
186
모네의 <잔담의 잔 강 La Zaan a Zaandam>, 1871, 유화, 42-73cm.
모네는 1871년 5월 27일 홀란드의 잔담으로 갔는데 도비니와 함께 간 것 같았습니다. 암스테르담으로부터 약 13km 떨어진 작은 동네 잔담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운하와 풍차가 있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모네는 잔담에 도착하여 피사로에게 그곳의 풍경이 듣던 것보다도 훨씬 아름다우며 그림그리기에 여념이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4개월을 머무는 동안 25점을 그렸습니다. 모네는 런던에서와 같이 뮤지엄에 갔으며, 특히 암스테르담의 릭스 뮤지엄을 좋아했습니다. 모네의 풍경화 한 점을 도비니가 구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