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카미유를 아내로 맞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모네의 <트루빌의 바닷가에서 Sur la Plage a Trouville>, 1870, 유화, 38-46cm.
모네는 트루빌에서 카미유를 모델로 여러 점 그렸습니다. 이 작품에서 카미유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카미유의 동생입니다. 7월 보불전쟁이 발발했지만, 6월 정식으로 결혼한 모네 부부는 9월가지 트루빌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 부댕도 함께 했는데, 1897년 7월 14일 부댕이 모네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이때 그린 스케치를 여전히 갖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183
모네의 <크루빌 바닷가의 카미유 Camille sur la Plage de Trouville>, 1870, 유화, 38-47cm.
185
부댕의 <트루빌의 바닷가 La Olage de Trouville>, 1865, 연필과 수채, 11.43-22.86cm.
184
모네의 <트루빌 바닷가의 카미유>, 1870, 유화, 45-36cm.
184-2
모네의 <트루빌의 바닷가 La Olage de Trouville>, 1870, 유화, 82-95cm.
모네는 1870년 6월 28일 카미유 동시외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았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증인들 중에는 쿠르베도 있었습니다. 7월 7일에는 모네를 보살펴준 마리 잔 고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 여름 노르망디의 트루빌 해변에서 작업에 열중한 모네는 카미유를 모델로 여러 점의 트루빌의 바닷가를 그렸습니다. 그는 수 주 동안 여덟 점 이상을 그렸으며, 단번에 그린 듯한 것들입니다.
부댕도 1865년 이곳에서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부댕의 작품과 모네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부댕은 선을 중심으로 고전적인 방법으로 그린 데 비해 모네는 색을 문질러서 형태만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자신이 받은 인상을 긴급히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그가 이듬해 홀랜드에서 그린 <잔담의 잔 강>과 <잔담의 항구>를 보면 이 시기에 색질을 툭툭 잘라서 표현했음을 봅니다.
187
모네의 <로슈 누아르의 호텔 The Hotel des Roches Noires>, 1870, 유화
모네는 <로슈 누아르의 호텔>을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바라본 장면으로 그렸습니다. 커다란 미국 국기가 쓱쓱 문지른 색조로 펄럭이고, 호텔 꼭대기에는 갈겨 쓴 듯한 붓질이 하늘로 치솟는데, 이것을 한 번의 붓질로 대충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잘 알려진 호텔의 랜드마크로 금박을 입힌 바다의 신입니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동안 모네는 보불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보불전쟁(1870년 7월-1871년 2월)은 프로이센의 지도 아래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이를 저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충돌로 발발한 전쟁입니다. 1870년 7월 9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했고, 군비가 우세한 프로이센은 북독일 연방제국뿐 아니라 남독일 제국의 지지까지 얻어 프랑스로 쳐들어갔습니다. 전황은 프로이센 독일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나폴레옹 3세는 9월 2일에 항복했지만, 독일군은 계속 진격하여 파리를 포위했습니다. 프랑스 국민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파리도 1871년 1월 28일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2월 베르사유에서 평화협정, 5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프랑스는 독일에 배상금 50억 프랑을 지불하고 알자스-로렌의 대부분을 할양했습니다.